한국을 보는 일본인의 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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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두 눈은 초점이 한곳에 모여야 사물을 올바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바다건너에서 한국을 바라보는 일본인의 눈은 초점이 크게 흐려져 있다.
따라서 일본에 투시되는 한국의 모습은 언제나 실상과 거리가 멀다.
일본의 한국에 관한 교파서 내용이 왜곡되며 비틀려 있는 것도 이 같은 사시현상의 하나다.
3·1운동을 폭동으로 고쳐놓고서도『문부성은 공정한 입장에서 검정하고 있고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는 비판은 당치않은 이야기』(23일·소천평이 문부상)라는 말을 공공연히 꺼낼 수 있는 곳이 일본이다.
『한일합방은 어느 쪽이 정당한지 모르니 조사해봐야 한다』(23일·송야행태 국토청장관)는 말까지 서슴지 않는다.
문제는 이처럼 비틀린 시각과 잘못된 의식구조를 가진 사람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일본 후꾸오까(복강)현에 사는「오오구라」(소창)고등학교의「사까구찌」(판구수준)라는 역사 교사는『사실을 정확히 쓴 역사교과서는 재미없다』는 지론을 갖고있다. 그는 특히『영웅의 활약도 없고 일 청, 일 노 전쟁 이후의 전쟁은 모두 일본의 침략 전쟁 이라고 쓴 교과서는 자기로서는 참고 읽을 수 없다』고 공언하는 사람이다.
이 같은 고정관념에 빠진 그가 언젠가 한일간의 강화도조약(1876년)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잘 알려진 대로 강화도조약은 일본이 운양호사건을 트집잡아 무력으로 조선을 위협, 일본인의 치외법권과 수입관세의 무세특혜, 조차지의 설정권 등을 받아낸 불평등 조약이자 일본의 한반도 침략이 시작된 이정표다.
「사까구찌」는 이 강화도조약이 불평등 조약이 아니었다는 것을 강변하면서『조선의 시대 역행적 쇄국정책과 배외주의가 조선, 나아가서 일본까지 얼마나 위험했던가를 일본교과서는 잘 설명해놓지 않고 있다』며 분개했다.
그의 주장 저변에 한국에 대한 우월감과 한국을 일본의 연장으로 보려는 의식이 깔려있음을 알 수가 있다.
일본이 한문을 보는 또 하나의 비틀린 시각은 한국이 일본 제국주의의 희생물이라는 사심을 강조함으로써 이데올로기의 선전도구로 삼으려는 경향이다.
예컨대『한일합방 이후 일본에 이주해온 조선인이 1945년에 2백만 명에 달했다』는 82년 고등학교 사회교과서의 경우 일본식민통치의 결과로 일본에 강제로 끌려가거나 이주한 한국인이 많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이 교과서는『45년 현재 일본에 있는 조선인이 2백만 명에 달했다』고「조선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재일 교포는 조선적, 즉 북괴 쪽이라는 인상을 은연중에 심어주려 했음을 알 수가 있다.
우리로서는 일본의 침략사를 왜곡하는 것도 반대지만 동시에 과거의 역사가 이데올로기의 선전도구가 되는 것도 원치 않는다.
일본은 극단적인 논리로 한국을 보려는 이제까지의 자세를 고쳐 두 눈에 초점을 모으고 진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동경=신성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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