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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근영 기자의 '이 그림은 왜?'] 주요 경매마다 등장하는 앤디 워홀의 ‘꽃’

중앙일보

입력

Andy Warhol, Flowers, Synthetic polymer and silkscreen ink on canvas, 55.9×55.9㎝, 1978. 24일 서울옥션 홍콩경매 경매 출품작(추정가 16억원)

어린 아이에게 꽃을 그리라면 이렇게 전형적 형태가 되지 않을까. 앤디 워홀(1928∼87)의 ‘꽃(Flowers)’이다. 워홀은 사진 잡지 'Modern Photography' 1964년 6월호에 실린 히비스커스 꽃 사진을 편집해 실크스크린으로 떠낸다.

히비스커스
히비스커스

이렇게 등장한 ‘꽃’ 시리즈는 그의 다른 작품 ‘캠벨 수프 깡통’이나 ‘브릴로 상자’처럼 공장서 찍어내는 소비재도 아니고, ‘매릴린 먼로’나 ‘케네디’처럼 유명인을 다룬 시리즈도 아니다. 그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꽃, 제목도 그대로 일반명사다. 그러나 오히려 그때문에 한층 더 추상적으로 보이며, 워홀 예술을 또 다른 지평으로 이끌었다.
수많은 워홀의 ‘꽃’을 경매해 온 크리스티측은 “꽃은 사실 오랫동안 예술에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라틴어, 죽음을 기억하라)’의 아이콘이었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곧 시들고, 궁극적으로는 죽는다는 것을 그림 속 싱싱한 꽃이 일깨워줬다”고 설명한다. 대량 인쇄 기술의 힘을 빌어 벽지처럼 패턴화해 찍어낸 워홀의 꽃은 참으로 밝고 단순하며, 그래서 팝아트의 낙관주의와 부박함이 빛난다. 그럼에도 언뜻 비치는 것은 누구나, 무엇이나, 언젠가는 시들고 죽어버린다는 덧없음의 정서다. 꽃 시리즈를 내고 4년 뒤 워홀은 그의 스튜디오인 ‘팩토리’에서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던 발레리 솔라나스가 쏜 총에 맞아 두 달간 입원한다.

# 미술 시장의 최강자, 워홀

워홀은 미술품 경매 시장에서 꾸준히 사랑받는 작가다. 지난해 세계 미술품 경매 시장에서 작품이 가장 많이 팔린 이도 워홀로 집계됐다. 1459점, 총 3억6741만달러(약 3931억원)로 피카소(1881∼1973), 장다첸(張大千ㆍ1899∼1983)을 눌렀다.

‘꽃’은 워홀 작품 중 최고가는 아니다. 가장 비싼 경매 기록을 갖고 있는 것은 ‘Silver car crash(Double dIsaster)’라는 1963년작 2면화다. 지난해 11월 뉴욕 소더비 경매장의 현대미술 이브닝 세일에서 1억544만5000달러(약 1155억원, 이하 수수료 포함)에 팔렸다.

Andy Warhol, Silver car crash(Double disaster), silkscreen ink and spray paint on canvas, 1963, 267.4×417.4㎝

이날 경매에서 워홀의 꽃 시리즈 중 최고가도 나왔다. ‘Flowers(Five foot flowers, 152.4×152.4㎝)’다. 꽃 시리즈가 처음 등장했던 64년도 작품으로 1136만5000달러(약 124억원)였다. 소더비는 이 대형 초기작에 대해 뉴욕 레오 카스텔리 화랑을 시작으로 존과 기미코 파워 부부, 조지 휴스턴 부인 등으로 이어지는 확실한 소장 이력에, 70년 뉴욕서 발간된 앤디 워홀 도록으로 시작하는 확실한 문헌 기록, 2001년 뉴욕 가고시안 갤러리서 열린 ‘팝 아트: 존과 기미코 파워 부부 소장품’전에 출품되는 등 확실한 전시 기록을 제시하며 가치를 높였다.

Andy Warhol, Flowers(Five foot flowers), acrylic and silkscreen ink on canvas, 1964, 152.4×152.4㎝

두 번째로 비싼 꽃은 2012년 5월 뉴욕 소더비의 이브닝 세일에 나온 ‘Ten-Foot Flowers(290.9×290.9㎝)’. 1967∼68년도 작품으로 1072만2500달러(약 117억원)에 팔렸다.

# 영원히 사랑받는 이미지 ‘꽃’

‘꽃’ 시리즈는 고급 문화와 대중 문화 사이에서, 새로운 대중과의 소통을 꾀한 워홀이 대량 인쇄술인 실크 스크린을 활용해 상업 문화와 익명성을 시험한 결과물이다. 직관적으로 이해되고 장식적인 소재라는 점도 꾸준히 사랑받는 데 한 몫 했을 거다. 국제 미술정보지 아트넷이 집계한 앤디 워홀의 꽃 시리즈 거래 정보를 보면 가격으로 상위 30위권의 작품들이 모두 2001년 이후 거래됐다.

1928년 펜실베니아 피츠버그에서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워홀은, 뉴욕서 팝아트의 거장으로 화려하게 자리잡은 뒤 87년 담낭 수술 합병증으로 세상을 떴다. 꽃이 언젠가 시들듯 워홀의 삶도 59세로 끝났지만, 그의 예술은 오늘날에도 사랑받으며 증식을 거듭하고 있다.
24일 홍콩에서 열리는 서울옥션 경매의 간판 작품 또한 그의 ‘꽃(55.9×55.9㎝)’이다. 다소 작은 크기의 후기작(1978)으로 추정가는 16억원이다.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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