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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나도 인구증가에 기여하고 싶다 하지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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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영희 기자 중앙일보 특파원

지난주엔 진지하게 이민을 생각해 봤다. 보건복지부 고위관계자가 ‘농담’으로 했다는 ‘싱글세(稅)’ 이야기를 접하고서다. 심각해지는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아이를 낳지 않는 이들에게 세금을 매긴다는 허를 찌르는 아이디어. 이것이 이 정부가 그토록 강조했(으나 실체는 모호했)던 ‘창조경제’로구나 이해해 보려 했지만 마음은 차갑기만 했다. 안 그래도 싱글에게 가혹한 연말이 다가오고 있건만 뭘 그리 잘못했다고 나라한테까지 이런 모욕을 당해야 하는 건가.

 SNS에 올라오는 싱글들의 자학개그를 보며 화를 달랜다. “싱글세 걷으려면 기본애인 보장하라” “앞으로 프러포즈 거절은 ‘너랑 결혼하느니 차라리 싱글세를 내겠어’로 하자” 등등이다. 한 포털사이트에는 이런 질문이 올라왔다. “전기세를 안 내면 나라에서 전기를 끊고, 수도세 안 내면 수돗물을 끊잖아요. 그럼 싱글세 안 내면 나라가 싱글 생활 끊어주는 건가요?”

 하나 마나 한 이야기지만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이들이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희생한 게 아니듯 싱글과 아이 없는 부부도 이 나라 잘되는 꼴 보기 싫어 애를 안 낳는 게 아니다. 일자리는 불안하고, 집값은 비싸고, 아이 키우기는 팍팍한 사회에서 추락하지 않으려 조심조심 발을 딛다 보니 그리되었을 뿐이다. 나 하나 지탱하기도 자신 없으니 진지한 연애 대신 ‘썸’을 택하고, ‘매력 자본’에서 밀리거나 감정 노동마저 싫은 사람들은 아예 관계를 포기한다. 출산율을 높이려면 조혼(早婚) 문화를 되살려야 한다는 주장도 현실성 없긴 마찬가지다. 고등학생의 78%가 대학에 가고, 취업난에 몇 년씩 졸업을 미루다 가까스로 일을 시작하면 여자들도 20대 후반.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일본 소설가 다나베 세이코의 『서른 넘어 함박눈』이란 책을 읽다 이 구절에 밑줄 쫙 그었다. “혼자 산다는 건 어렵다. 오해받기 쉽다. 고영오연(외롭고도 도도)하게 살지 않으면 모욕을 당한다. 그러나 또한 어딘지 조금 애처로운 데가 없으면 얄밉게 보인다. 그러나 또한 너무 애처로운 티를 내면 색기가 있다는 말을 듣는다. 그 균형이 어렵다.” 싱글이 얼마나 살기 어려운지 호소하자는 게 아니다. 싱글이건 커플이건 이 나라의 지속가능을 위해 아이를 생산해야 하는 도구가 아니며, 저마다 자신의 조건 안에서 제대로 살기 위해 기를 쓰고 있는 존재란 거다. 나라의 정책이란 게 그렇게 개인들의 속사정까지 헤아리기 어려운 거라 한다면, 정말 그런 나라엔 살고 싶지가 않다.

이영희 문화스포츠 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