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엔 진지하게 이민을 생각해 봤다. 보건복지부 고위관계자가 ‘농담’으로 했다는 ‘싱글세(稅)’ 이야기를 접하고서다. 심각해지는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아이를 낳지 않는 이들에게 세금을 매긴다는 허를 찌르는 아이디어. 이것이 이 정부가 그토록 강조했(으나 실체는 모호했)던 ‘창조경제’로구나 이해해 보려 했지만 마음은 차갑기만 했다. 안 그래도 싱글에게 가혹한 연말이 다가오고 있건만 뭘 그리 잘못했다고 나라한테까지 이런 모욕을 당해야 하는 건가.
SNS에 올라오는 싱글들의 자학개그를 보며 화를 달랜다. “싱글세 걷으려면 기본애인 보장하라” “앞으로 프러포즈 거절은 ‘너랑 결혼하느니 차라리 싱글세를 내겠어’로 하자” 등등이다. 한 포털사이트에는 이런 질문이 올라왔다. “전기세를 안 내면 나라에서 전기를 끊고, 수도세 안 내면 수돗물을 끊잖아요. 그럼 싱글세 안 내면 나라가 싱글 생활 끊어주는 건가요?”
하나 마나 한 이야기지만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이들이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희생한 게 아니듯 싱글과 아이 없는 부부도 이 나라 잘되는 꼴 보기 싫어 애를 안 낳는 게 아니다. 일자리는 불안하고, 집값은 비싸고, 아이 키우기는 팍팍한 사회에서 추락하지 않으려 조심조심 발을 딛다 보니 그리되었을 뿐이다. 나 하나 지탱하기도 자신 없으니 진지한 연애 대신 ‘썸’을 택하고, ‘매력 자본’에서 밀리거나 감정 노동마저 싫은 사람들은 아예 관계를 포기한다. 출산율을 높이려면 조혼(早婚) 문화를 되살려야 한다는 주장도 현실성 없긴 마찬가지다. 고등학생의 78%가 대학에 가고, 취업난에 몇 년씩 졸업을 미루다 가까스로 일을 시작하면 여자들도 20대 후반.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일본 소설가 다나베 세이코의 『서른 넘어 함박눈』이란 책을 읽다 이 구절에 밑줄 쫙 그었다. “혼자 산다는 건 어렵다. 오해받기 쉽다. 고영오연(외롭고도 도도)하게 살지 않으면 모욕을 당한다. 그러나 또한 어딘지 조금 애처로운 데가 없으면 얄밉게 보인다. 그러나 또한 너무 애처로운 티를 내면 색기가 있다는 말을 듣는다. 그 균형이 어렵다.” 싱글이 얼마나 살기 어려운지 호소하자는 게 아니다. 싱글이건 커플이건 이 나라의 지속가능을 위해 아이를 생산해야 하는 도구가 아니며, 저마다 자신의 조건 안에서 제대로 살기 위해 기를 쓰고 있는 존재란 거다. 나라의 정책이란 게 그렇게 개인들의 속사정까지 헤아리기 어려운 거라 한다면, 정말 그런 나라엔 살고 싶지가 않다.
이영희 문화스포츠 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