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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속으로] 오늘의 논점 - 무상복지를 둘러싼 여야 간의 갈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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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중앙일보와 한겨레 사설을 비교·분석하는 두 언론사의 공동지면입니다. 신문은 세상을 보는 창(窓)입니다. 특히 사설은 그 신문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가장 잘 드러냅니다. 서로 다른 시각을 지닌 두 신문사의 사설을 비교해 읽으면 세상을 통찰하는 보다 폭넓은 시각을 키울 수 있을 겁니다.

중앙일보 <2014년 11월 12일자 30면>

무상복지 파탄 … 정치권은 고해성사부터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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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탄 난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을 둘러싸고 정치권의 소모적인 책임 떠넘기기가 한창이다. 국민의 눈에는 청와대와 여야 모두 한심하게 비칠 뿐이다. ‘무상보육만 합법’이라는 청와대의 이분법적 접근이나, “해법은 증세(增稅)로 갈 수밖에 없다”는 야당의 주장은 부질없는 정치적 삿대질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청와대와 여야,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이 가장 먼저 할 일은 국민을 향한 솔직한 고해성사다.

 ‘공짜 복지 시리즈’의 파탄은 오래 전부터 예고돼 있었다. 기초연금을 포함한 3대 무상복지 지출은 올해 21조원, 그리고 2017년에는 30조원까지 늘어나게 돼 있다. 지난해엔 꼼수로 간신히 돌려 막았으나 더 이상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청와대가 내세운 ‘지하경제 양성화’와 ‘비과세·감면 축소’로는 복지비용을 감당할 수 없음이 드러났다. ‘증세 없는 복지 확대’라는 공약 자체가 정치적 수사였다. 야당도 원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2010년 무상급식으로 ‘공짜 시리즈’를 촉발했으며, 지난 대선 때 문재인 후보는 박근혜 대통령(97조원)의 두 배가 넘는 192조원짜리 공약을 들고 나왔다.

 무책임한 정치와 현명하지 못한 유권자는 민주주의를 타락시키는 최악의 조합이다. 이제 정치권과 우리 사회는 무상 포퓰리즘의 전반을 되돌아봐야 할 때다. 무상복지가 파탄 난 뒤에도 ‘복지 대(對) 반복지’ ‘보편적 복지 대 선택적 복지’ 같은 분열적 편싸움은 사치일 뿐이다. 이미 대한민국은 ‘저(低)부담-저복지’에서 ‘중(中)부담-중복지’ 사회로 옮겨왔다. 이를 되돌리려는 퇴행적 발버둥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미 성큼 다가온 중복지에 맞춰 그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 고민해야 할 때다.

 지금 증세를 검토하기에 앞서 먼저 해야 할 일이 적지 않다. 우선 중앙정부와 지자체들은 여전히 선심·전시성 행사에 적지 않은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 이를 화끈하게 줄이는 고통분담 없이 “돈이 없어 복지 디폴트를 선언할 수밖에 없다”는 건 염치없는 일이다. 그 다음, 선거 때 공약한 복지 지출을 과감하게 구조조정하는 게 납세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누수가 많고 주먹구구인 복지 전달체계도 대폭 손질해야 할 것이다. 과연 부잣집 아이들에게까지 공짜 점심을 주고 전업주부에게까지 워킹맘과 똑같은 수준의 보육을 지원하는 게 맞는 일일까.

 일부 복지론자들은 입만 열면 “북유럽 복지 선진국들을 보라”고 한다. 그리고 항상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비교 잣대로 삼는다. 물론 복지국가를 향해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은 멀다. 하지만 최근 복지예산 팽창 속도가 OECD 회원국 가운데 1위라는 불편한 현실도 감안해야 한다. 재정 형편에 맞춰 복지 비용 증가 속도를 신중히 관리해야 한다. ‘중부담-중복지’를 감당하기에도 벅찬 국가 체력으로 고(高)복지만 강조하는 것은 무리다. 이들 북유럽 국가는 조세부담률이 50%가 넘는다. 반면 우리의 조세부담률은 19% 수준이다. 오히려 한국이 눈여겨봐야 할 나라들은 미국과 일본일지 모른다. 이들 국가는 조세부담률이 우리와 엇비슷한 20% 수준인데도 상당히 효율적인 복지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러고 난 뒤 마지막으로 검토해야 할 카드가 증세다. 냉정하게 따지자면 지금은 경기부양을 위해 재정을 확대하고 금리를 인하하는 총력전을 펼치는 중이다. 이럴 때 갑작스러운 증세는 경기부양을 가로막는 극약처방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청와대와 여야가 불가피한 증세라고 판단되면 국민들에게 솔직히 고백하는 게 우선이다. 그리고 나서 단계적이고 질서 있는 증세를 고민해야 한다. 증세의 방향도 깊이 고민해야 한다. 국제 경쟁력을 어떻게 유지할지, 악화되는 양극화를 어떻게 누그러뜨릴지도 모두 고민해야 한다.

 돌아보면 선거철마다 정치권이 세금이 들어가야 할 복지 공약을 ‘무상’ ‘공짜’로 포장했던 것부터 문제였다. 뒤늦게 감당할 수 없는 계산서가 돌아오자 정치 공방으로 변질시키며 딴청을 피우고 있다. 하지만 책임 떠넘기기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국정을 책임지는 청와대와 정부부터 무상복지 파탄의 해결책을 주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야당 역시 그동안 국가 운영에 무책임한 태도를 보여 유권자의 외면을 받아온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제 우리 사회가 모두 머리를 맞대고 무상 포퓰리즘을 깊이 반성하면서 가장 합리적인 해법을 고민하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이 없다.

한겨레 <2014년 11월 10일자 31면>

청와대, ‘급식-보육’ 편 가르기 할 때인가

지난 6일 대전교육청에서 열린 전국 시도교육감 임시총회에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오른쪽) 등 시도 교육감들이 참석, 누리 과정 어린이집 예산 등을 논의했다. 대전시의회도 지난 12일 본회의에서 예산안 대책 촉구 건의안을 가결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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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에 대한 나라의 임무는 이들이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나도록 ‘잘 가르치고 잘 먹이는’ 일이다. ‘보육’과 ‘급식’은 어느 하나를 선택하고 다른 하나를 포기할 성질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은 엊그제 “무상보육은 대통령 공약이고 무상급식은 대선 공약이 아니다”라며 “누리과정은 무상급식과 달리 지방자치단체와 지방교육청의 법적 의무사항”이라고 말했다. 무상보육을 위해 지방교육청이 무상급식용 예산을 무상보육으로 돌리라고 윽박질하고 나선 것이다.

 안 수석의 발언은 바꾸어 말하면 ‘아이들이 무상으로 먹는 점심은 불법’이므로 ‘영·유아 동생들의 보육을 위해 형·언니들이 점심을 포기해야 한다’는 이야기와 같다. 실제로 새누리당은 청와대의 발표가 있고 나서 “무상급식은 법적 근거가 없는 재량사업”이라고 노골적으로 지방교육청에 대한 압력을 강화했다. 정신이 제대로 박힌 청와대와 여당이라면 어떻게 하면 재원을 최대한 염출해 아이들을 잘 가르치고 먹일까를 고민해야 할 때에 고작 무상보육과 무상급식의 편가르기나 하고 나선 것이다. 그 사고방식의 황당함에 실망과 분노를 넘어 아득한 절망감이 몰려온다.

 무상급식은 이미 2010년 지방선거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등을 거치며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사안이다. 또 현재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가 3년째 무상급식을 해오고 있다. 대선에서 굳이 공약을 내걸 필요도 없었던 사안인 것이다. 그런데 인제 와서 “무상보육 대선공약 나가시니 무상급식은 길을 비키라”는 식으로 나오는 것은 참으로 어이가 없는 일이다. 사실 청와대와 여당이 지방교육청을 압박하는 근거로 내세우는 영유아보육법 시행령 제23조 1항은 이미 대선이 있던 2012년에 만들어진 상태였다. 청와대가 지금에 와서 보육이 ‘국가 책임’이 아니라 지방교육청의 의무사항이라고 발뺌할 요량이었다면 왜 당시에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는지 이유가 궁금하다.

 안 수석의 발언은 개인의 생각이 아니라 박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한 것이 분명하다. 박 대통령이 대선 전은 물론 대선이 끝난 뒤에도 “0~5살 보육은 국가가 책임지겠다”느니 “보육사업처럼 전국 단위로 이뤄지는 사업은 중앙정부가 책임지는 것이 맞다”는 등의 약속을 철석같이 한 것을 상기하면 참으로 허탈하기 짝이 없다. 박 대통령이 이런 식의 책임 떠넘기기를 되풀이하니 국정은 계속 꼬이고 나라는 더 큰 혼란에 빠져드는 것이다.

논리 vs 논리

중앙 “여야, 포퓰리즘 반성을” 한겨레 “청와대, 책임 미뤄선 안돼”

전국 시장·군수·구청장 등 100여명은 지난 11월 6일 경주에서 총회를 열고 재정 악화로 기초연금과 무상보육 등의 복지비용을 지자체가 더 이상 부담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서울 등 일부 교육청은 무상보육 중 어린이집 예산은 내년에 3개월분만 지원하겠다며, 그 이후는 중앙정부가 책임질 것을 요구했다. 무상급식도 문제다. 홍준표 경남지사는 내년 무상급식 지원 예산을 편성하지 않겠으니 교육청에서 맡으라고 했다.

 중앙정부, 지자체, 교육청 간에 무상보육과 무상급식 파탄을 놓고 책임 공방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이 가운데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은 “박 대통령이 공약할 당시 무상급식은 공약이 아니었다며 무상급식은 지자체 재량이었기 때문에 공약으로 내세운 적이 없고, 무상보육은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고 말했다. 안종범 수석은 “누리과정(만 3~5세 유아에게 무상으로 제공하는 교육·보육 과정)은 무상급식과 달리 법적으로 장치가 마련된 지자체와 지방교육청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반면 “무상급식은 지자체와 지방교육청의 재량에 따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새정치민주연합의 김성수 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을 통해 “누리과정은 박 대통령이 공약만 한 게 아니라 중앙 정부가 책임지는 게 맞다고 못을 박아 약속한 사업”이라며 누리과정의 책임을 지방 교육청에게 떠넘기는 건 말이 안된다고 비판했다. 또 무상급식은 이미 2010년과 2011년 선거를 통해 국민적인 합의를 이룬 사안이라 대통령이 공약을 하고 말고 했어야 할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제 와서 대통령 공약이 아니었다고 나 몰라라 하는 것은 무책임의 극치라고 지적했다. 

 중앙은 사설의 첫 문장에서 무상교육과 무상급식이 파탄 난 사업임을 말하고 있다. 중앙은 여야 모두에게 국민들 앞에 솔직할 것을 권한다. 무상보육만 합법이라는 청와대의 주장도 해법은 증세(增稅)에 있다는 야당의 주장도 모두 부질없는 ‘정치적 삿대질’이니, 청와대와 여야,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이 무상교육과 무상급식이 선거에서 국민들의 표를 얻기 위한 선심성 공약이었음을 고백하라는 것이다. 실제로 박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증세 없는 복지 확대’를 약속했다. 중앙은 이를 ‘정치적 수사’라고 단정한다. 지난 대선 박근혜 후보의 97조원짜리 복지정책이나 문재인 후보의 192조원짜리 복지정책 모두 현실성이 희박한, 대중들의 표만 의식하는 소위 ‘포퓰리즘’이라고 중앙은 꼬집는다.

 중앙이 제시하는 해답은 ‘증세’가 아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들은 선심·전시성 행사에 적지 않은 예산을 낭비하고 있으니, 이를 ‘화끈하게’ 줄이라는 것이다. 중앙은 복지지출도 과감하게 줄이라고 한다. 소위 보편적 복지가 아닌 선별적 복지를 하란 이야기다. 중앙은 ‘증세’는 경기부양을 가로막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신중하게 써야 할 카드라고 지적한다.

 한겨레는 무상보육과 무상급식은 양자택일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못 박는다. 무상보육만 합법이고 무상급식은 그렇지 못하다는 청와대의 주장에 정면으로 맞서는 의견이다. 한겨레는 아이들을 잘 먹이고 잘 가르쳐야 할 의무를 가진 사람들이 무상급식은 법적인 근거가 없다고 하면서 무상교육만 합법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일종의 ‘편가르기’라고 규정한다.

 무상급식이 2010년 지방선거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등을 거치며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루어진 사안이라는 한겨레의 지적은 객관적으로 옳다. ‘무상교육’이 지난 대선의 박근혜 후보의 공약이었기에 이는 합법이며, 무상급식은 야당이 주장한 것이었으니 이는 불법이라는 청와대의 태도룰 일종의 편가르기라고 보는 한겨레의 시각은 이런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한겨레는 박 대통령이 “0~5살 보육은 국가가 책임지겠다”거나 “보육사업처럼 전국 단위로 이뤄지는 사업은 중앙정부가 책임지는 것이 맞다”고 약속한 사실을 상기시킨다. 보육사업인 누리교육이 중앙정부의 책임이라 해놓고서 이제 와서 ‘국가 책임’이 아니라 지방교육청의 의무사항이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발뺌’이라는 것이 한겨레의 지적이다.

 중앙은 사태의 본질이 ‘포퓰리즘’에 있다고 본다. 그러면서 ‘무상 포퓰리즘을 깊이 반성하면서 가장 합리적인 해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결론을 맺는다.

 한겨레는 대선 전에 다르고 대선 후에 다른 청와대의 비일관적 태도룰 문제로 지적한다. 편을 가르고 책임을 떠넘기려 하지 말고 청와대가 국민 앞에서의 약속을 지킬 때 안정적인 국정을 일굴 수 있다는 것이 한겨레의 결론이다.

 두 신문의 논조는 다르지만, 두 신문 모두, 진실이야 어찌되건 말건 선거에서 일단 이기고 보자는 왜곡된 정치풍토를 비판적으로 다루고 있다. 선심성 공약에 함부로 휘둘리지 않는 유권자의 냉철한 태도가 절실하다.

김보일 배문고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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