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공정위의 이상한 잣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서로 다른 업종의 기업들이 합치는) 혼합 결합은 효율성 증대 효과가 크고 경쟁을 저해할 가능성은 작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1일 기자 브리핑에서 하이트맥주의 진로소주 인수를 허용해 준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공정위는 "주류시장에서 경쟁이 저해될 가능성이 상당할 것으로 우려됐고 공정거래법도 위반했다"며 "그래서 시정조치를 부과해 조건부로 허용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물류비 절감 효과 정도만 있을 뿐 경쟁 저해에 따른 손실이 더 클 수 있다는 설명도 있었다.

요컨대 하이트가 진로를 인수하면 경제적 이득보다 손실이 더 클 것으로 판단돼 손실을 줄이도록 조치했다는 내용이다. 기자는 진로 인수가 잘됐다거나 잘못됐다고 평가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공정위가 인수를 허용하면서 밝힌 논리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공정위의 생명은 경쟁 촉진에 있다. 경쟁을 제한하는 기업결합은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고, 산업합리화라든가 경제적 이득이 크다는 등의 부득이한 경우에만 허용돼야 한다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공정위의 지론이다.

그런데도 공정위 스스로 경쟁이 저해될 것으로 상당히 우려하면서, 게다가 기업결합에 따른 손실이 더 클 것으로 판단하면서도 진로 인수를 허용한 것이 사실이라면 스스로 존립 목적을 어긴 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그렇지 않아도 공정위는 기업결합의 허용 여부를 결정할 때 그 기준이 제각각이라는 비판이 많다. SK텔레콤의 신세기통신 인수와 현대차의 기아차 인수는 허용했지만 삼익악기의 영창악기 인수나, 무학소주의 대선주조 인수는 불허했다. 사건마다 공정위는 나름대로 이유를 댔지만 공교롭게도 규모가 큰 기업결합은 대부분 허용하고, 작은 것은 불허해 '공정위도 대마불사(大馬不死)에 사로잡혀 있다'는 비판도 있다. 공정위가 '불공정'하다는 평가를 받아서야 되겠는가.

김영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