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직 34년…서기관 정년퇴임 제1호 김덕모 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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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여름옷이 13년 전에 지은 한복밖에 없다고 아내가 정년 퇴임 식에 참석 않겠다고 해서 달래느라 애를 먹었지요』 .
30일 검찰서기관으로는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정년퇴임, 34년간의 검찰공무원생활을 청산하고 집에 돌아온 김덕모씨 (61 서울지검 증거물과장 서울 응암동39의145)는 깊은 감회에 빠졌다.
김 과장은 공무원 생활을 하려면 목적이 뚜렷하고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어떤 위치의 공무원도 잘살기를 바란다면 발을 잘못 디딘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무관이 될 때까지 아내가 삯바느질을 했어요. 아내의 시력이 떨어지고 재봉틀이 낡아 톱니가 안 맞게 되니 서기관으로 승진되어 식생활은 해결되더군요』
87세의 노모를 모시고 16평 짜리 언덕 배기에 있는 무허가 집에서 15년째 살고 있지만 2남2녀를 건강하게 키운 것이 큰 자랑이다.
김 과장은 보성 고보를 졸업한 후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다 해방을 맞아 좌우익의 혼란 속에서 잡아다준 빨갱이가 하루만에 풀려나는 것을 보고 48년6윌 검찰서기로 출발했다. 명수사관으로 이름을 날리며 동 백림 사건 때는 춘천지검의 수사관으로 서울로 뽑혀와서 일할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았고 대검 수사관시절 굵직한 권력형 부조리는 도맡아하는 등 「각광받는 자리」를 두루 거쳤지만 티끌 만한 오점도 없었다는 게 그의 자랑이다.
『어려운 처지에 당할 때 사람의 크기를 알 수 있겠더군요. 교도소시절 이재학 씨의 의연하던 자세가 특히 기억에 남고 수사기관에서 살려달라고 머리를 조아리는 고관대작들을 보면 한심했지요.
가난하게 살지 말고 수입이 나은 집달리나 사법서사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전직동료들의 권유도 많이 받았지만 「할 일이 남았다」는 생각에 이를 거절했다.
김 과장은 며칠씩 밤을 새는 「소나기 식 수사」로 건강을 해쳤고 특히 최근에는 간염으로 주위에서 몇 달 출근하지 말고 쉬라는 얘기도 들었지만 정년퇴임 일까지 단 하루도 결근을 않고 버텼다.
김씨는 퇴임 식에서 받은 녹조근경훈장과 검찰총장·서울검사장의 기념패가 가보나 되는 듯 쓰다듬었다.
퇴임식 후 서울지검은 검사장 이하 전직원이 현관에 줄을 서 박수로 전송하며 치료비 2백60만원을 모아 전달했다. <권일 기자〉<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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