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내게 말 걸었어요” 자폐증 혁이 특별한 전시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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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자폐증을 앓고 있는 동혁군이 자신이 만든 나무 조각 작품을 들고 있다. [사진 중외학술복지재단]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원서동 아트스페이스H 갤러리에선 특별한 전시회가 시작됐다. 경기도 고양시 소재 장애아 특수학교인 홀트학교 4학년 동혁(11)군과 친구들이 만든 미술작품 전시회다. 애벌레가 가로등 높이만큼 솟아올라 세상을 내려다보는 그림이 담긴 벽시계, 홀쭉이·뚱뚱이·키다리 모양의 나무 조각이 전시됐다. 자폐증·다운증후군 등 발달장애를 겪고 있는 어린이들의 눈에 비친 세상은 특별하고도 유쾌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특별전에 참가한 ‘어린이 작가’ 혁이에게는 자폐성 언어장애가 있다. 어려서부터 유난히 말이 없었지만 가족들은 그저 말이 좀 늦은 줄 알았다. 엄마 이은경(45)씨는 혁이가 눈을 맞추고 말할 순간을 기다렸다. 하지만 혁이는 항상 엄마가 아닌 다른 곳을 바라봤다.

 그러다 일곱 살 되던 해, 자폐 진단을 받았다. 이씨는 “아이를 데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 싶어 두렵고 막막했다”고 말했다. 진단 후가 더 힘들었다. 이씨는 “24시간 혁이 옆에 붙어 살더라도, 어떻게든 세상과 소통을 하는 아이로 키우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녹록지 않았다. 집 근처 부산의 한 공립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운동회도, 학부모 참관수업도 모두 혁이는 빠져야 했다. 이씨는 “학교에서 ‘혁이는 집에서 쉬면 좋겠다’고 연락이 왔다”고 말했다. 따돌림과 어둠에 갇힌 혁이는 갈수록 예민해졌다. 각종 클리닉의 치료도 별 소용이 없었다. 누나와 아빠까지, 온 가족이 고통 속에 살았다.

 그러던 3년 전 가을날, 이씨는 혁이와 단둘이 서울행 기차를 탔다. 중앙일보에서 홀트학교 관련 기사를 읽자마자 그 길로 부산을 떠났다. 대기 끝에 홀트학교로 전학하는데 성공한 혁이는 서서히 달라졌다. 특히, 매주 1회씩 JW중외그룹 산하 중외학술복지재단이 지원한 미술교육 이후 혁이는 부쩍 차분해졌다. 마음에 비친 세상을 붓으로 그리고, 찰흙으로 조물락거리면서 혁이는 세상에 말을 거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최근에는 한중아동청소년국제교류전 미술대회에서 우수상, 12회 장애우청소년미술대전에서 금상을 받기도 했다.

 이씨는 “내 아이의 장애를 인정하기까지 힘들었다. 그래서 정형화된 치료만 찾아다녔다”며 “내 욕심을 내려놓고 마음을 아이에게 열고 나니, 혁이가 붓을 쥘 때 가장 행복해 하는 게 보였다”고 말했다. 미술교육을 지원한 이경하 JW중외그룹 부회장은 “장애 어린이들이 예술적 재능으로 사회에 기쁨을 줄 수 있는 기회를 계속 만들겠다”고 말했다. 전시는 18일까지 열린다.

박수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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