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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벽에 핀 꽃, 김자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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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드레스를 입고 암벽을 오르는 장면을 연출한 김자인. 암벽 위의 발레리나라고 부를 만하다. [사진 보그 코리아·차혜경 사진작가]

“암벽 위의 발레리나를 보는 느낌이다.”

 지난 7월 프랑스 뷔앙송에서 열린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 3차 월드컵. 현지 TV 해설자는 우승자 김자인(26·올댓스포츠)을 이렇게 표현했다. 1m53㎝의 작은 키로 암벽 위를 사뿐사뿐 날아다니는(?) 모습이 발레리나를 연상케 한다는 뜻이었다.

 미국프로농구(NBA)의 마이클 조던(51)도 현역 시절 발레리노라 불렸다. 그의 드리블은 기술을 넘어선 예술이었다. ‘농구의 신’ 조던처럼 김자인도 스포츠 클라이밍 리드 부문 세계 1인자다. 김자인은 지난 9월 IFSC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 선수로는 처음 우승했다. 올해 7차례 월드컵에서 4번이나 우승을 차지했다. 올 시즌 월드컵 랭킹과 세계랭킹 1위도 확정지었다. 월드컵 시리즈 최종전이 열리는 슬로베니아로 떠나기 전날인 지난 12일 김자인을 서울 강남구 더 자스 클라이밍 짐에서 만났다.

 -클라이밍을 한 계기는.

 “아버지는 고양산악연맹 부회장 출신, 어머니는 대한산악연맹 심판 출신이다. 아버지가 자일(등반용 로프)의 ‘자’, 인수봉(북한산 봉우리)의 ‘인’을 따서 ‘자인’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셨다. 두 오빠도 클라이머다. 초등 6학년 때 오빠들을 따라 시작했다. 처음에는 고소공포증 탓에 중간에 매달려 엉엉 울었다. 하다보니 두려움 이 사라졌다. 암벽과 하나가 되는 느낌이 좋았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김자인의 상처 투성이 발.

 -1m53㎝, 41㎏로 체구가 작은 편인데.

 “먹는 걸 가리지 않고 좋아한다. 그렇지만 체중 조절을 위해 하루에 한 끼만 먹는다. 일년 중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기간은 2~3주 뿐이다. 이 종목에 이상적인 키는 1m64㎝다. 키 큰 선수들은 한 번에 홀드(인공암벽에 튀어나온 부분)를 잡지만, 난 다리를 뻗어도 닿지 않아 점프를 해야 한다. 신발도 내 발 크기보다 20㎜나 작은 205㎜를 신는다. 작은 신발을 신다보니 발가락이 휘어질 정도인데 이렇게 해야 발에 힘을 모으기 쉽다. 홀드를 수없이 잡다보니 지문이 사라졌다 생겼다한다. ”

 -‘거미 소녀’ ‘암벽 여제’ ‘암벽 위의 발레리나’ 중 어떤 별명이 가장 좋나.

 “영화 ‘스파이더 맨’을 보고 ‘거미줄이 있다면 더 빨리 오를 텐데’라고 부러워한 적이 있다. ‘암벽 위의 발레리나’란 별명은 처음엔 좀 오글거렸다. 그렇지만 ‘암벽 여제’보다 이게 더 좋다. 클라이밍은 발레처럼 리듬을 타야 한다. 아름답고 섬세한 동작도 많다.”

 -스포츠클라이밍 종목 리드(Lead·15m 인공암벽을 8분 내 누가 더 높이 오르는지 겨루는 종목), 볼더링(Bouldering·5m 인공암벽 4∼5개를 놓고 완등 숫자를 겨루는 종목), 스피드(Speed·10m나 15m 암벽을 누가 빨리 올라가는지 겨루는 종목) 중 리드만 출전 중이다. 2011년엔 리드와 볼더링을 동시 석권했는데.

 “지난해 4월 볼더링 월드컵에서 착지하다 오른 무릎 십자인대를 다쳤다. 몇주 전 MRI(자기공명영상)를 찍었는데 전방 십자인대가 80% 끊어졌다더라. 슬로베니아 월드컵 후 오스트리아로 가서 난생 처음 무릎 수술을 받는다.”

 김자인의 코치인 큰오빠 김자하(30)씨는 “자인이는 십자인대 대신 다른 부위를 활용해 암벽을 탄다. 신체적으로도 불리하다. 99% 노력형 선수”라고 말했다.

 -서울 명동 한복판 84m 빌딩을 완등하고, 농구 골대에 맨손으로 올라 덩크슛을 하기도 했다.

 “ 골프에선 박세리 , 피겨는 김연아 선수가 불모지를 개척했다. 한국 여성은 특유의 악바리 근성이 있는 것 같다. 내가 즐기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많이 클라이밍에 도전했으면 한다.”

박린 기자 rpark7@joona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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