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화선 제거 못한 「의약분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약국휴업사태는 하루만에 일단 수습됐으나 의약분업분규의 불씨는 그대로 남아있다. 따라서 보사부와 의사·약사간의 재협상의 시한인 7월1일까지 극적인 변화가 없는 한 휴업사태는 재연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약사회는 약국 문을 다시 열었지만 어디까지나 「휴업결의의 실시연기」라는 태도를 분명히 하고있다.
보사부는 약사회측의 휴업철회를 종용하면서 약사회와 의사회가 각각 상대방과 보사부가 받아들일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 이를 놓고 다시 협의를 벌이기로 했지만 사실상 『대안은 있기 어렵다』는 것이 의사회와 약사회의 똑같은 생각이다.
의사회측은 처방전발행을 권장하는 「임의분업」에서 벗어나 처방전발행이 강제성을 띠면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태도고, 약사들은 처방전발행이 의무화돼 강제성이 없으면 분업의 실효성이 없으므로 무슨 일이 있어도 강제성이 보장돼야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게다가 보사부는 「임의분업·약제비 법원경유청구」라는 이미 발표된 지침은 변경될 수 없음을 명백히 하고있다.
의사회측은 다만 약국이 병원을 거치지 않고 약제비를 직접 보험조합에 청구하는 문제는 고려해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진료비심사와 관리의 난점 때문에 보사부측이 「절대불가」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보험조합의 약제비를 포함한 진료비심사는 환자 한사람을 대상으로 하는데 병원과 약국에서 제각기 약값과 그 밖의 진료비를 분리, 청구하게 되면 진료의 타당성심사가 불가능할 뿐 아니라 엄청난 인력이 소요된다는 번거로움 때문이다.
결국 약사회 대의원총회가 휴업결의에서 요구한 ▲보사부의 「처방 및 조제에 관한 세부지침」중 「약사법에 의거」라는 단서를 빼 처방전발행을 의무화할 것과 ▲병원을 통해 청구토록 한 약제비를 약국이 보험조합에 직접 청구할 수 있게 할 것 등 2개항은 모두 충족될 수 없는 상황이다. 약사들은 의약강제분업이 안된 채 전국민이 보험대상이 되는 2종 보험이 실시되면 환자들이 값싼 보험수가로 치료도 받고 약도 지어주는 병원으로만 몰려 약국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때문에 의약분업을 실시해 약국도 보험에 참여해야하고 분업이 실효성이 있으려면 처방전발행이 강제성을 띠어야만 한다는 주장에서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보사부도 약국을 많이 이용하는 시민들의 편의와 약사들의 생업보장을 위해 약국을 보험에 참여시켜야 한다는 방침이나 현행 약사법이나 현실적 여건으로 보아 「강제분업」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이다. 약사법 부칙3조는 『의사는 자신이 치료용으로 사용하는 의약품에 한해 조제할 수 있다』고 의사의 조제권을 인정하고 있다.
때문에 「강제분업」을 하려면 약사법을 먼저 고칠 수밖에 없는데 법 개정은 그대로 「의약강제분업」을 확정하는 것이 되므로 장기적인 의약제도 개편의 방향이 미정인 상태에서 당장 개정은 어려운 실정. 보사부는 이에 따라 2종 보험지역에서 임의분업으로 시험을 해보고 그 결과를 토대로 방침을 확정하고 법도 고치는 것이 순서라고 지적, 그때까지는 『기다려달라』는 설득이지만 약사들의 입장은 다르다.
우선 약사법을 고치지 않고도 강제분업이 가능하다고 본다. 의료보험에 관해서는 약사법이나 의료법보다 특별법인 의료보험법이 우선하므로 의료보험법에 따라 만든 보사부의 지침가운데 「약사법에 의거」라는 단서만 빼면 의무화가 된다는 해석이다. 그리고 약사법의 의사조제권은 약사와 약국의 절대수가 부족하던 53년 법제정당시 경과규정으로 부칙에 삽입된 것인 만큼 이제는 폐지해 의·약의 전문화를 이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시험기간동안손해를 감수하면서 임의분업을 따르라는 요구는 일방적이며, 무리라고 말한다. 시험이 끝나기 전에 도산할 거라는 주장이다.
보사부가 「약사법에 의거」라는 단서를 지침에 굳이 끼워넣은 것도 바로 약사회의 해석 같은 오해의 소재를 없애기 위해서다. 아무리 2종 지역의료보험 시범사업이라 하더라도 보사부의 행정지시가 실정법인 약사법을 배제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의사의 조제권을 인정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임의분업임을 명백히 하기 위해 단서를 넣었다는 설명.
결론은 자명하다. 약사회가 보사부의 설득을 받아들여 행정지도를 통한 실효성 확보로 강제분업주장을 완화하느냐, 마느냐에 달려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실효성 확보의 방법으로 적극협력을 약속한 의사회로부터 처방전발행의 약속을 보사부가문서로 받고 그것을 담보로 약사회를 설득하는 방안이 현재로서는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의견이 있다.
「전국일제휴업」의 초강경결의에 반대하다 대의원총회에서 황원성 회장이 사의를 표명하는 바람에 구심점을 잃은 약사회 집행부와 예봉이 꺾여 기세가 떨어진 약사들이 끝까지 강경자세를 고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이번에 일을 그르치면 숙원인 의약분업의 실현이 늦어진다는 판단과 생계의 위협이 다가온다는 절박감에서 결의를 고집할 경우 또다시 소동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혹시 내외의 사정으로 행동이 억제되더라도 약사들의 위기의식이 해소되지 않으면 불만은 내연하며 커질 수밖에 없다.
보사부는 약사회가 주장하는 의약분업의 필요성중에서 가장 설득력 있게 보는 것은 약제비 절감효과.
이는 병원에서도 약을 주고 약국서도 마음대로 약을 파는 현행 의약혼용―약품자유판매제도가 안 써도 좋은 약, 안 써야 좋을 약을 너무 많이 쓰게 하고 결과적으로 국민보건에 위협이 될 뿐 아니라 의료비용을 많이 늘리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의약이 완전 분리돼 의사는 처방전만 때주고 약사는 처방전이 있어야만 약을 팔 수 있는 서구의 경우 전체진료비중 약제비의 비중은 8∼17%. 이에 비해 우리 나라는 35·8%나 된다. 바로 이같은 비중이 의사들이 조제권을 안 내놓으려하고 약사들이 꼭 찾아야겠다고 나서는 실리이기도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