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 헤매든 한일 경협 본격적 줄다리기 재개 |한국 측의「새로운 구상」이 의미하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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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는 22일「마에다·도시까즈」(전전리일) 주한 일본대사에게 60억 달러 한일 경협의「새로운 구상」을 공식 전달함으로써 경협 타결을 위한 돌파구를 제시했다.
이로써 한동안 미로를 헤매던 한일 경협 교섭은 이범석 외무장관이 취임한지 20일 만에, 그리고 장 여인 사건과 록히드 사건 등의 양국 국내사정으로 가동이 중단 된지 1개월 남짓만에 정상궤도로 복귀했다.
정부의 새 제안내용은 밝혀지지 않았으나「새로운 제안」이라는 말 자체가 60억 달러의 수정을 함축하고 있으며 그 방향과 폭도 교섭 분위기를 일신하는 선이 될 것으로 풀이된다.
요담에 배석했던 최동진 아주 국장의『한일 경협의 조속하고도 원만한 타결을 위해 정부의 새로운 구상을 제시했다』는 브리핑은 이러한 뉘앙스를 뒷받침한다. 그러면 정부의 새로운 구상에 담긴 신축성의 폭은 어떤 것일까. 그 선의 방향은 지난달 24일 노신영 전 외무장관이 「마에다」대사를 불러 경협 타결을 위한 일본측의 성의 있는 대응을 촉구한 자리에서 제시한 한국 측 입장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노 전 장관은 지난달 24일「마에다」일본대사에게 종래의 60억 달러 전액 ODA 주장을 「ODA 또는 ODA에 준하는 것으로 다소의 융통성을 시사한 바 있다.
이번의 새로운 대안은 그런 입장에 보다 구체성을 부여해 일측 안에서△ODA의 증액 또는 ODA에 준하는 다른 차관으로의 대체△상품차관의 필수적인 포함이 주요골자로 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한 가지 간과 할 수 없는 사실은 이러한 조건이 맞을 경우 60억 달러 규모에 크게 구애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융통성의 가능성이다. 최근 한 관계 소식통이「문제는 규모보다 질」이라고 한 것은 정부의 관심이 「규모」못지 않게 「공여조건」에 비중을 두고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일본측이 지난 4월29일 「야나기야·겐스께」 (유곡겸개) 일본외무성 외무 심의관을 한국에 보내 전달한 일본의 공식대안은△ODA 15억 달러△JEXlM(일본수출입은행융자) 25억 달러 등 총 40억 달러로 돼있다. ODA는 △연리4%선△7년 거치18년 상환 조건에 엔화를 직접 제공, 아무런 조건 없이 제3국에서도 물자를 살수 있는 이른바「언타이드론」이다.
반면 JEXIM은 일반적으로△연리9 25% (구 금리는7·75%) △거치 기간 2∼4년에 5∼15년의 분할상환이며 일본물자만 산다는 상업차관보다 그렇게 나을 것이 없는 조건부 융자다. 따라서 정부의 입장은 우선 금리가 ODA 수준 이어야하고 재3국 구매도 가능한 언타이드론차관의 성격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지난 4월29일 일본이 내놓았던 대안은 지난 2월 18, 19일 2일간의 도오꾜 제2차 예비회담 및 지난3윌15일, 당시「무라오까·구니오」 (촌강방남) 주한 일본공사에 의해 통보된 중간조정결과보다도 후퇴한 것이다.
한국 측이 지난 1월 12일, 13일의 1차 예비회담에서 60억 달러의 내용으로 11개 프로젝트를 제시한데 대해 일본측은 이중△상수도△하수도△다목적 댐 및 홍수대책△교육△의료 등 5∼6개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ODA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일본측이 약속한 5∼6개의 ODA프로젝트는 20억∼22억 달러 규모인데도 정작 구체적인 액수를 제시하면 재정핍박, ODA자금한도 등을 이유로 15억 달러 선으로 끌어내렸다.
그러면서도 일본은 과거 연1억 달러 미만이었던 대한 ODA를 2∼2·5배로 늘린 것만 해도 한일간의 특수한 관계를 십분 고려한 것이라고 생색을 내고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일본의 사정이 어렵지 않다고 증언한다.
일본은「앞으로 5년 동안 ODA를 배증하겠다」는 작년의 공언에도 불구하고 초년도 부 터 이를 어기고있다.
일본의 81년도 ODA 공여실적은 총 31·7억 달러로 80년에 비해 4·1%나 감소했고 대GNP비율도 80년의 0·32%에서 0·28%로 떨어졌다.
또 80∼8l년간 배정 액도 다 소진시키지 앓아 오히려 ODA자금이 남아돌고 있는 실정이다. 자유세계 제2의 부국인 일본의 개도국에 대한 ODA제공비율은 24개 OECD회원국 중 11위에 머무르고 있다.
일본의 짜기만 한 대 개도국 경협 실적은 한국에 대해서는 더욱 명확하다. 65년 국교정상화 이후 총2백19억 달러의 무역흑자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같은 기간 ODA와 JEXIM을 합쳐 겨우 15억7천만달러의 공공차관을 한국에 공여 했을 뿐이다.
이제 정부가 일본의 좀처럼 열리지 않는 문을 열기 위해 제시한 새 구상이 일본측에 어떻게 받아들여질는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현시점예서 한가지 분명한 것은 양국이 모두 더 이상 머뭇거리고 있을 시간여유가 없다는 점이다. 양국이 이 문제만 언제까지고 붙잡고 있을 수 없게 돼 있다.
한국은 8월 전두환 대통령의 아프리카순방, 9월 바그다드 비동맹 회의 등의 큼직한 외교 일정이 기다리고 있고 일본도 11월의 자민당 총재선거까지 「스즈끼」수상의△10월 북경방문△8∼9월 영국·캐나다 등 선진국 수뇌들의 방일 등이 예정돼있다. 따라서 굳이 타결의 시기를 선택한다면 7월 한달 이다. 이번이 마지막 남은 찬스라는 것이 업저버들의 일치된 감이라 양국의 대승적인 대처가 요구된다.
현안이 단순한 경제사안이기 앞서 처음부터「새로운 한일관계의 정립」이라는 차원에서 제기된 것이며 경협에 대한 결론은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의 한일관계를 결정짓는「모든 것」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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