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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일점’ 감독 박미희 “난 엄마 리더십 싫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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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꼴찌팀 흥국생명을 맡은 박미희 감독은 선수들과 소통하며 팀을 1위에 올려놓았다. 박 감독은 “선수 모두 제 역할을 하는 팀을 만들겠다”고 했다. [용인=오종택 기자]

여자 프로배구 흥국생명 박미희(51) 감독은 한 시대를 풍미한 배구 스타다. 올드팬들은 그가 1980년대 미도파 유니폼을 입고 날렵한 플레이를 펼치던 장면을 기억한다. 센터였지만 세터 포지션까지 소화할 정도로 다재다능해 ‘코트의 여우’로 불렸던 그가 지도자로 돌아왔다. 두 아이를 키워낸 박미희는 TV 해설위원을 거쳐 이제 승부의 세계에서 남자 지도자들과 경쟁한다.

 흥국생명 선수들은 박미희 감독을 ‘공주’라고 부른다. 평소에도 큰 소리를 내지 않고 여간해선 화를 내지 않기 때문이다. 박 감독은 훈련 시간에도 선수들을 믿고 맡기는 스타일이다. 하루 6~7시간 훈련을 하는 동안 대여섯 마디만 한 적도 있다. 대신 박 감독은 선수들의 고충을 들어주기 위해 일대일 면담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꼴찌 흥국생명이 시즌 초반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만년 하위권을 맴돌던 흥국생명은 1라운드에서 4승1패로 1위에 올랐다. 지난해 6라운드 동안 7승23패에 그쳤던 팀이 흥국생명이다. 따뜻하고 자상한 박 감독의 ‘엄마 리더십’이 먹히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1일 경기도 용인 흥국생명 연수원에서 만난 박 감독은 “‘엄마 리더십’은 약해보여서 싫다. 냉정한 승부 세계에서 따뜻하게만 보이면 어떡하나. 화가 나면 나도 버럭 소리를 지른다”고 말했다.

 - 흥국생명이 1라운드 선두인데.

 “한 경기 끝날 때마다 다음 경기 생각하느라 기뻐할 틈이 없다. 아직 멀었다. 다른 팀들은 아시안게임에 주요 선수들을 내보내 손발을 잘 맞추지 못했다. 곧 다른 팀들의 조직력이 강해질 것이다. 이제부터가 진짜 승부다. 그래도 이젠 다른 팀들이 흥국생명 경기는 ‘거저먹는 게임’이라는 생각을 안 할 거다. 우리 선수들이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돼서 기쁘다.”

 - 꼴찌 팀을 맡아 부담이 컸을 텐데.

 “프로 감독이 되고 싶었지만 그동안 애들 키우느라 몇 번의 제의를 고사했다. 어설프게 감독을 맡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애들이 다 커서 감독직에 전념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남편과 군에서 제대한 아들, 대학 3학년인 딸이 집안일을 도와주고 있다. 주위에서는 좀 더 잘하는 팀을 맡으라고 했지만 난 흥국생명이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 선수들을 어떻게 변화시켰나.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18명 전원 면담을 했다. 아침에 시작하면 밤 10시까지 목이 쉴 정도로 이야기하고, 열심히 들었다. 선수들이 ‘왜 배구를 하는가’하는 것부터 가정사·남자친구 등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다 털어놓았다. 선수들과 마음이 통했다고 느꼈고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많이 지면서 자신감이 떨어져 있는 선수들에게 ‘중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각인시켰다.”

 - 여자끼리 더 속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나.

 “확실히 그런 점이 있다. 다들 ‘감독님이 어떻게 이렇게 이야기를 잘 들어주나’하는 생각을 한 것 같다. 하지만 여자 마음을 꿰뚫어 본다고 피곤해할 수도 있다(웃음). 여성 감독으로서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크다.”

 - 부진했던 조송화와 이적생 곽유화 등이 활약하면서 ‘박미희 매직’이라는 말도 나오는데.

 “조송화는 세터로서 꾸준하게 경력을 쌓은 선수다.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어깨를 단련시키고 있다. 곽유화는 기본기가 탄탄한 실전용이다. 곽유화처럼 리시브를 잘하는 선수는 없다. 단점을 지적하기 보다는 잘하는 점을 칭찬해 주고 있다. 한 명에 의존하기 보다 선수 모두가 제 역할을 하는 팀을 만들겠다.” 

한편 IBK기업은행은 12일 평택 이충문화체육관에서 열린 GS칼텍스와의 여자배구 2라운드 경기에서 풀세트 접전 끝에 세트스코어 3-2로 이겨 2연승을 달렸다. 남자부에서는 현대캐피탈이 우리카드를 3-1로 꺾었다.

용인=박소영 기자

승부 세계서 약해 보이면 안 돼
만년 하위 흥국생명 4승1패 1위
그저 얘기 들어주고 칭찬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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