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논술이 공교육 살리는 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대통령의 '나쁜 뉴스' 발언 이후 본격적으로 촉발된 서울대 2008학년도 입시안 파문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정치권까지 가세해 '전면전' '초동 진압'이란 거친 용어로 서울대를 몰아붙이던 첨예한 대립 상태에서는 벗어났지만 정운찬 서울대 총장이 당초 입시안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이어서 논란은 여전하다.

교육 당국이 8월 말까지 내놓겠다는 논술고사 가이드 라인과 서울대가 제시할 통합형 논술 유형에 따라서 이 같은 논란이 증폭될 가능성도 남아 있다.

이번 입시안 논란의 핵심은 통합형 논술이 '본고사 부활'이고, 사교육을 더욱 부추겨 공교육을 황폐화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논란의 대상이나 방향이 모두 본질에서 비켜나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우선 실체도 없는데 '본고사 부활' 논란이 불거져 나왔다. 대학들은 새 대입제도의 큰 방향만을 제시했을 뿐 논란이 된 통합형 논술의 구체적인 유형은 아직 제시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사교육 시장이 본고사 부활을 기정사실화하면서 학생.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장사'에 나서면서 논란이 확대됐다.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서울대 입시안을 간섭하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명백한 본고사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사교육 시장이 들썩이는 마당에 그냥 내버려둘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서울대 입시안을 진일보한 바람직한 방안이라고 평가했던 교육부는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학들이 새로 도입하려는 통합형 논술이 본고사냐 아니냐는 지엽말단적인 사안일 수 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논술의 교육적 필요성 유무다. 교육 당국도 통합형 논술에 본고사 잣대를 들이대기에 앞서 논술의 교육적 필요성을 먼저 학생.학부모들에게 설명하고 일선 학교에서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게 옳은 순서였다.

초.중등교육의 핵심 목표는 문제 해결력과 창의적 능력, 학력을 갖춘 인재를 키우는 것이다. 통합형 논술은 이러한 목표와 내용을 확인하기 위한 바람직한 수단이다. 프랑스의 바칼로레아(고교 졸업 자격 논술시험), 미국의 에세이 등 선진국 대입에서 논술 비중이 큰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정운찬 총장은 "자기만의 독특한 아이디어를 정리할 수 있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국제사회에 적응하기 힘들기 때문에 논술시험을 보겠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일선 학교 현장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시내 한 고교 교사는 "통합형 논술 준비가 학교 안에서 이뤄지면 학생들이 공부를 더 폭넓게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서울대 기초교육원 조사에 따르면 서울대생의 51%가 글쓰기 등 기초교양교육의 강화가 시급하다고 느끼고 있다. 글쓰기 교육을 고교 과정 이전에 충분히 받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대학생이 돼서도 애를 먹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점에서 이번 서울대 논술 파문을 공교육 내실화를 위한 전화위복의 계기로 승화시킬 필요가 있다. 통합형 논술은 학교 교육이 전통적인 입시 위주의 문제풀이 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준비하기가 어렵다. 사교육을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는 그래서 나온다. 그러나 이 같은 부작용은 학교 교육 정상화로 풀어야지, 대학에 전적으로 책임을 돌릴 일이 아니다.

따라서 학교 교육의 틀이 '읽고, 토론하고, 쓰는' 방식 중심으로 바뀌는 게 시급하다.

교육 당국도 중.장기 계획을 세워 교사들이 독서.논술지도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학교 교육의 근본적인 결함은 외면한 채 대학 입시제도만 묶어두려고 해서는 교육의 질적 발전은 요원하다.

김남중 정책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