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분 만에 1조원어치 팔았다 … 중국 알리바바의 괴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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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중국 항저우 알리바바 본사 전광판에 이날 올린 총 매출액이 실시간으로 표시되고 있다. 오후 9시 12분(현지시간) 현재 매출 500억 위안(약 8조8000억원)을 돌파했으며, 모바일 플랫폼을 통한 거래가 전체의 42.8%를 차지했다. 오른쪽에는 중국 각 지역과 세계 각 나라별 구매 현황이 표시되어 있다. [사진=예영준 특파원]

하루 매출 10조원을 넘보는 지상 최대의 장터가 열렸다. 이 거대한 장터를 한 손에 주무르는 객주(客主)는 세계 최대의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 그룹이다. 1년에 한 번 열리는 장날은 4개의 1자가 겹치는 11월 11일, 즉 중국의 ‘싱글스데이’다. 상인과 소비자가 직접 대면할 필요가 없는 온라인 장터란 점이 전통 장터와 다른 점이다. 알리바바 그룹은 이날 세계 유력 언론 30곳을 포함한 취재진과 외빈 등 600여명을 항저우(杭州)의 본사로 초청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온라인 주문액수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이벤트를 개최했다.

 11일 0시, 자정을 알리는 카운트다운과 함께 싱글스데이가 시작되자 전광판의 숫자가 숨가쁘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1분12초 만에 주문액은 10억위안, 우리돈으로 1700억원을 가뿐히 넘어섰다. 1조원을 돌파하는 데 18분 밖에 안 걸렸다. 전광판에 뜨는 모든 숫자가 천문학적 숫자여서 몇 번씩 자릿수를 헤아려야 했다. 황레이(黃磊) 알리바바 그룹 매체투자총감은 “평소의 반값에 쏟아져 나오는 특가 상품을 사기 위해 이 날을 기다려 온 네티즌들이 자정이 되기 무섭게 폭풍 클릭에 나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거대 시장 중국의 위력, 나아가 왜 중국의 전자상거래 업체가 경쟁력을 갖는지 실감났다. 밤 9시11분쯤 500억위안을 돌파했다. 알리바바 측은 “올해 만 24시간 동안의 매출액 목표는 600억위안(약 10조원)“이라고 밝혔다. 지난해엔 352억위안(약 6조2927억원)이었다.

 원래 쇼핑과는 무관한 싱글스데이를 ‘쇼핑 데이’로 탈바꿈시킨 건 알리바바 창업자이자 회장인 마윈(馬雲)의 아이디어였다. 쇼핑 대목인 국경절 연휴(10월초)와 크리스마스·연말 성수기 사이의 징검다리로 11월달에 뭔가 이벤트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데 착안한 것이었다. 알리바바는 2009년 처음으로 독신 남녀들을 위해 할인 이벤트를 베푼다는 명분으로 이날 하루로 한정된 폭탄 할인(50% 전후)과 각종 쇼핑 이벤트를 기획해 소비자 끌어들였다. 이듬해부터 다른 경쟁 업체들이 따라오기 시작하면서 이 날은 미국의 쇼핑 대목인 블랙프라이데이의 매출을 뛰어넘었다.

 알리바바의 양대 온라인 쇼핑몰인 T몰과 타오바오에 출점한 업체들에겐 11·11이야말로 사업의 성패가 걸린 대목이다. 입점업체 중엔 싱글스데이 하루에만 연간 매출의 20%를 판매하는 업체도 수두룩하다. 프랑스 브랜드 엘르의 중국 수입상인 시노슈프림은 주력 상품인 여성용 지갑과 핸드백을 합쳐 하루 200개 정도를 판매한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11일 하루에만 2만5000개의 주문이 들어왔다. 리다후이(李達輝)사장은 “올해는 3만개 가량 주문이 들어올 것으로 예상한다”며 “9월부터 프랑스 본사에 싱글스데이를 겨냥한 한정 상품을 주문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고 말했다.

 알리바바의 메인 서버에는 고객들의 모든 주문 정보가 실시간으로 잡혔다. 지역별로 어느 곳에서 주문이 많이 들어오는지, 모바일과 PC 가운데 어느 플랫폼을 사용하는지, 어떤 품목이 잘 팔리는지 등등의 데이터들이 모두 실시간으로 전광판에 떴다. 알리바바 최고경영자(CEO)인 루자오시(陸兆禧)는 “모바일 플랫폼을 사용한 주문이 40% 넘게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올해 처음 나타난 현상”이라고 말했다. 가장 많은 매상고를 올린 상품은 휴대폰이었다.

 알리바바는 올해부터 싱글스데이 이벤트의 글로벌화를 추진, 세계 20여국 업체를 할인 이벤트에 참여토록 하고 세계 주요 국가에서 마케팅을 강화했다. 그 덕분인지 주문이 들어온 곳은 중국 국내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한국과 미국·유럽·일본에서도 주문이 쇄도한 것을 비롯 모두 190여개 국가로부터 주문 기록이 잡혔다. 지구촌 전역에서 중국의 싱글스데이에 맞춰 쇼핑 대열에 합류한 셈이다. 황레이는 “중국인 유학생이 많거나 화교가 많이 살고 있는 나라의 주문량이 많은 경향을 보였다”고 말했다.

 싱글스데이는 한 인터넷 기업이 중국인의 생활 깊숙이 침투해 소비 행태까지 변화시킨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하루에 10조원어치의 물건을 팔아 치운 2014년의 싱글스데이는 뉴욕 증시 상장에 이어 알리바바의 괴력을 또 한번 확인시켜 줬다.

항저우=예영준 특파원

◆싱글스데이=중국에서 11월 11일을 가리키는 말로 ‘광꾼제(光棍節)’라고도 한다. 광꾼은 독신남, 애인이 없는 사람을 뜻한다. 1의 갯수에 따라 1월 1일은 소광꾼제, 1월 11일과 11월 1일은 중광꾼제, 11월 11일은 대광꾼제라 한다. 90년대 난징의 대학에서 시작됐는데 알리바바가 대대적 할인행사를 하면서 미국 블랙프라이데이같은 중국 최고의 쇼핑 시즌으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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