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은 표현 자연스럽고 생동감 넘쳐|『설악의 밤』…언어의 기복 심해 균형 잃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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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우리 겨레는 시룰 숭상하고 시를 생활화해 온 전통을 지니고 있다. 오늘 우리 사회에 창궐하는 병리도 알고 보면 시 정신이 마비된 물질만능의 풍조에서 비롯된다. 이 겨레 시 짓기는 좁게는 우리 고유의 시 형식을 계승 발전시키자는 데에 뜻이 있고 넓게는 우리 겨레의 진보적 시 자를 캐내서 수척해 가는 정신 문화의 꽂을 피우자는 데 있다 하겠다.
「새벽 사찰」은 이 난에서도 많이 등장한 소재인데 시의 구성과 언어의 조탁이 어지간하다. 그러나「진애」「봉독」「생」등의 낱말은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찾아 쓰려는 노력의 결핍으로 밖에는 볼 수 없다. 자기의 솜씨만 믿지 말고 더 공부하기를.
「초여름」은 계절 감각도 있고 억지스럽지 않은 표현이 생동감을 흠뻑 불러일으킨다. 첫 수보다는 둘째 수가 흠 잡을 데 없는 일품이다.
「새4」의 지은이는 열심히「새」의 연작을 보내 오고 있는데 방법도 새로운 것이어서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다. 새로운 것이란 다름 아닌 종래의 시조의 운율을 넘어서 자유시의 호흡을 도입하는 것인데 이런 시도가 처음은 아니나 이 나름대로의 장래성이 보인다.
「한계령」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는 분명하게 밝혀지고 있으나 이 만한 것을<꼭 써야 할 까닭>이 와 닿지 않는다. 창조의 세계에서는<자기만의 것>이 생명인데 어디선가 낯익은 듯한 표현은 표절이 아니더라도 낡은 것이라는 인상을 씻지 못한다.
「설악의 밤」은 사실과 관영을 배합하는 기법의 작품이다. 그러나 언어의 기복이 심하여 균형을 잃고 있다.<객창에 파노라마처럼>은 낙제점이고<두 귀를 쫑긋 새운다>는 합격점이다. 참고하기 바란다.「여름마을」은<예사로운> 듯 하지만 실상은 예사롭지 않은 세밀한 관찰력을 내보인 작품이다. 시골 풍경의 정서를<하교 길 아이들 소리에 돌아눕는 산그늘>로 마무릴 수 있으면 강한 것이다.
「길」은 인간의 삶에 대한 하나의 비유이나 이런 류의 시라면 좀더 관조의 눈으로 하나의 지침이 제시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 밖에「정년의 김형에게」는 시라기보다 하나의 메시지다. 시가 메시지를 지녀서 안 되는 것은 아니나, 시보다 메시지가 강해서는 시는 죽고 마는 것이다. <이근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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