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억류 미국인 석방, 북·미 대화 촉매제 되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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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북한이 남은 미국인 억류자 2명을 지난 주말 전격 석방했다. 한 명이 지난달 석방된 데 이어 나머지 2명도 모두 풀려남으로써 북·미 간 현안 중 하나였던 억류자 문제가 해소됐다. 3명 모두 북한에 들어갔다가 ‘반(反)공화국 적대행위’ 등 석연치 않은 이유로 체포돼 복역 중이거나 재판을 기다리던 상태였다.

 이 시점에 북한이 미국인 억류자 전원을 전격 석방한 배경과 의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다. 북한 집권층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는 내용의 강력한 북한 인권 결의안이 유엔에서 발의돼 다음달 총회 표결을 앞두고 있다. 그 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한 외교적 제스처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맞춰 베이징에서 열리는 미·중 정상회담을 겨냥한 유화책이란 분석도 있다. 남은 억류자 석방을 위해 미국이 내민 카드가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국장(DNI)이었다는 점도 북한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클래퍼 국장은 중앙정보국(CIA)·국방정보국(DIA)·국가안보국(NSA)·연방수사국(FBI) 등 16개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미국의 ‘정보 총책’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일일 정보보고를 하는 그가 대통령 특사로 평양에 간 것이다. 그런 만큼 단순히 억류자 석방 임무만 맡았을 것으로 보긴 어렵다. 모종의 메신저 역할을 겸했다고 보는 것이 상식에 부합한다.

 미 정부는 억류자 석방이 순수한 인권 문제라고 강조하고 있다. 비핵화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주기 전까지는 북한과 협상에 응하지 않는다는 기존 입장에도 변화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이번 억류자 석방 조치로 북·미 관계를 가로막아 온 걸림돌 중 하나가 제거된 것은 사실이다. 중간선거 참패로 레임덕 위기를 맞은 오바마로서는 외교 문제에서 ‘레거시(업적)’가 필요한 상황이다. 북한의 핵능력은 갈수록 고도화하고 있다. 제2의 고농축우라늄(HEU) 공장이 가동에 들어갔다는 정보분석도 있다. 어떤 형태로든 북·미 간 소통이 필요한 시점이다. 억류자 석방이 북·미 대화의 촉매제가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