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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의 칼럼] 응급피임약 복용 증가 '빨간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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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면

정호진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

얼마 전 한 여성이 근심 가득한 얼굴로 병원을 찾았다. 결혼 후 첫 아이를 2년 뒤에 갖기로 계획하고 있었는데, 그날따라 남편이 성관계 중 콘돔 사용을 기피했다고 한다. 배란일을 계산해 보니 아슬아슬한 것 같다며 ‘사후 피임약’을 처방해 달라고 했다.

상담을 통해 그녀가 이전에도 상습적으로 응급피임약을 복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응급피임약을 반복해 먹으면 호르몬체계가 교란돼 피임 효과가 떨어진다. 피임 방법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부족했던 안타까운 사례였다.

 병원에서 환자를 대하다 보면 응급피임약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여성이 의외로 많다는 데 새삼 놀란다. 2002년 국내에 처음 도입된 이후 응급피임약의 처방률이 꾸준하게 증가한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지난 10여 년간 일반 경구피임약의 판매량은 약 1.3배 더디게 증가한 반면 응급피임약은 도입 이후 판매량이 3배가량 급증했다.

 응급피임약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응급 상황에서 인공임신중절을 줄이는 데 기여했지만 잘못된 사용으로 여성 건강을 해칠 수 있다. 응급피임약은 일반 경구피임약보다 호르몬 함량이 10배 이상 높아 한 번 복용으로도 여성의 몸에 부담을 준다. 일반 경구피임약이나 자궁 내 시스템과 같은 사전 피임법과 비교해 피임 실패율이 15%로 높다. 따라서 예정일보다 생리가 일주일 이상 늦으면 임신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최근 여성이 주도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사전 피임법이 도입됐다. 산부인과 전문의와 충분히 상담해 연령과 건강 상태, 생활패턴, 임신 계획, 출산·유산 경험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해 자신에게 적절한 피임법을 선택할 수 있다.

 먼저 일반 경구피임약을 복용하는 것이다. 생리·임신에 관여하는 호르몬(에스트로겐·프로게스테론)을 통해 여성의 배란을 억제해 피임 효과를 나타낸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약을 복용하면 99% 이상 피임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미레나·제이디스 같은 호르몬 함유 자궁 내 장치를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매일 피임약 복용이 어려울 때, 첫 출산 후 터울 조절이 필요한 때, 더 이상 출산 계획이 없을 때 등 장기 피임 때 고려한다.

 호르몬 자궁 내 장치는 한 번 시술하면 최대 3∼5년까지 피임 효과를 본다. 또 임신을 원하면 제거 후 즉시 가임력이 회복된다는 장점이 있다. 과거에는 출산 경험이 있는 여성에게 많이 쓰였지만 최근에는 호르몬 함량이 보다 낮고 크기가 작은 제품이 나와 출산 경험이 없는 여성에게도 시술된다. 자신에게 꼭 맞는 피임법을 선택해 건강과 사랑을 모두 지키는 현명한 여성이 많아지길 기대한다.

정호진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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