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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선택제 일자리의 선진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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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호 30면

현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 중 하나는 고용률 70% 달성이다. 집권 5년 동안 248만 개의 일자리를 추가로 만들어 2012년 64%였던 고용률을 잘나가는 선진국 수준인 70%로 올리겠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잘나가는’의 의미는 일하는 사람이 많아 소득수준이 높고 근로시간도 길지 않아 삶의 질이 높다는 것이다.

쉽지 않을 것 같던 이 목표는 일단 최근 2년간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2014년 목표치가 65.6%인데 9월 현재 고용률은 65.7%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엔 시간제 근로의 증가가 큰 몫을 했다. 애초 고용률 70% 달성에 시간제 근로를 통한 고용 증가분이 전체의 38%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할 수 있다.

문제는 최근 고용 증가의 상당수가 시간제 근로를 통한 것이기 때문에 고용의 질이 문제라는 견해가 계속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전체 취업자가 지난 1년 동안 약 1.8% 증가할 동안 시간제는 약 8% 증가했다. 증가율로는 네 배가 넘는다. 원래 시간제 근로의 정의는 통상 일주일에 36시간 미만 근로하는 경우를 의미하며, 고용 형태상으로는 비정규직 근로자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시간제 근로는 ‘나쁜 일자리’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고, 소위 ‘알바’로도 불린다. 따라서 과거의 시간제 자리는 임금 수준이나 사회보험의 가입 여부 등에서 전일제 일자리와 비교해 좋지 않은 일자리였다. 오죽했으면 시간제 일자리를 2002년 노사정위원회 노사정 합의로 사회적 보호가 필요한 ‘취약근로자’로 파악해 비정규직의 범주에 포함시켰겠는가.

그러나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시간제 일자리는 그 명칭도 시간선택제로 바뀌어 괜찮은 일자리를 표방하고 있다. ‘시간선택제’는, 즉 육아와 퇴직 준비·학업 등으로 근로자가 자발적으로 선택하고 4대 보험 가입 등 기본적인 근로조건이 보장되는, 차별 없는 일자리를 의미하는 미래지향적 일자리다. 통계상 시간제 일자리의 임금과 근로조건은 최근 개선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선진국의 경우 고용 형태 분류 시 우리나라와 같은 비정규직 개념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국제비교에 사용되는 개념은 임시직 일자리(temporary workers)로 지속적인 고용이 보장되지 않는 일자리를 의미한다. 물론 시간제 일자리는 이 임시직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 선진국에서 시간제 근로를 임시직의 범주에 포함시키지 않는 것은 전일제와 비교해 임금과 근로조건뿐 아니라 고용에서의 차별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선진국의 경우 같은 조건일 때 시간당 임금으로 계산하면 오히려 시간제 일자리가 더 높은 경우도 흔하다. 이는 시간제 근로자의 생산성이 경우에 따라 전일제 근로자보다 낮지 않다는 점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선 아직 시간선택제 근로가 널리 정착되지 않은 데다 시간선택제 근로자의 학력이나 경력 등이 높지 않은 편이어서 생산성이 낮다. 이러한 낮은 생산성이 기업에서 아직 시간제 고용을 꺼리는 주요한 이유다.

그러나 향후 시간제 일자리 종사자 대부분이 기존에 전일제 일자리로 근무하던 사람들이라면, 이들이 반일만 일할 때의 생산성은 전일제일 때보다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업종에 따라 일감이 많을 때 생산성이 낮지 않은 시간선택제 근로자를 고용한다면 수요자인 기업의 이해관계와도 맞아 시간선택제 확산의 선순환 구조가 정립될 수 있다.

1980년대 이후 네덜란드가 그러한 전형적인 사례다. 시간제의 확대가 오히려 손님이 많은 점심시간 전후의 근무라는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한 사례로 흔히 거론된다. 즉 시간제 일자리가 전일제 일자리를 대체하지 않고 둘 다 증가하며 경제성장을 견인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시간선택제가 제대로 정착되려면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 하는 이분법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 분류기준은 외국의 경우 찾아볼 수 없다. ‘시간제 일자리는 나쁜 일자리’라는 과거의 고정관념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시간선택제는 비정규직이라는 고용 형태가 아니라 근로시간의 장단으로 구분되는 일자리의 유형일 뿐이다. 이를 위해 현재 시간제 일자리가 비정규직으로 분류되는 비정규직의 정의를 다시 정리해야 한다. 나아가 소위 비정규직법으로 불리는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서 기간제와 시간제 근로를 분리하는 법의 정비가 필요하다.



유경준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미 코넬대 경제학 박사. 한국노동연구원을 거쳐 현재 KDI 수석이코노미스트. 전공은 고용과 노동. 저서는 『성장과 고용의 선순환 구축을 위한 패러다임 전환』 『비정규직 문제 종합연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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