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치락… 뒤치락…, 브레즈네프 후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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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브레즈네프」후계를 둘러싼 크렘린의 권력암투는 지난 15년 동안 소련 비밀경찰을 지휘해온「유리·안드로포프」가 전면에 나섬으로써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됐다. 정치국원인 그가 KGB위원장직을 내놓고 당 중앙위 서기직을 맡아 킹 메이커였던「미하일·수술로프」가 관장했던 사상 및 이론문제를 담당하게 됨으로써「브레즈네프」측근에서 당 주도권을 다투던 그북의 세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된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당 서기 임명이 곧바로 서기장으로의 길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국원으로 중앙위 서기직을 겸임한 사람은「안드로포프」말고도 여러 명 있다.「브래즈네프」 는 논의로 치더라도「콘스탄틴·체르넨코」「안드레이·키릴렌코」「미하일·고르바체프」등이 있다. 이 세 사람 모두 한 때「브레즈테프」의 후계물망에 올라 한번씩은 선두에 나섰던 경력을 갖고 있다.
이런 점에서 지금으로선「안드로포프」의 서기임명은 후계자 물망 반열에 들여놓은 것으로 봐야지, 아무런 견제 없이 서기장 자리로 향할 수 있게 됐다고 속단 할 수는 없다. 그의 서기임명이 기존 인물이나 다른 경쟁자를 밀어 제치고 이뤄진 것이 아니라「코시긴」과 「수술로프」가 사망 한 후 비어 있는 자리를 메운 것이라고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래도 얼마 전「수술로프」가 사망 한 후 나돈「브레즈네프」측근 인물들의 부패스캔들 배후에는 후계 투쟁에 한 몫 하려는 KGB의 손이 있다는 소문도 있었고 이 때를 전후해「안드로포프」가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주목 할 필요가 있다.
지난달「레닌」의 생일기념식전에서 그가 기념연설을 맡아 주역 노릇을 한 사실도 그의 위치 강화의 한 조짐으로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와 비슷한 시기에 후계의 선두 주자로 꼽혀온「체르넨코」의 세력은 계속 약화되는 인상을 주어왔다.
「체르넨코」의 활동이 활발하던 시기엔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던「키릴렌코」가 최근 갑자기 모습을 나타낸 것도「안드로포프」의 부상과 관련해 크렘린 내부에 새로운 권력질서가 형성되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 같다.
「안드로포프」의 서기 임명을 또 다른 각도에서 보는 사람들도 있다. 소련 지도층 일부에 근년 들어 점증하는 군부의 영향력을 우려하는 분위기가 있고, 이 들은 군부 견제를 위해「안드로포프」를 밀어준 것이란 분석이다. 소련에서는 전통적으로 군부와 비밀 정보기관의 관계가 그리 좋은 편이 못되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소련 판「나폴레옹」이나「야루젤스키」가 등장할지도 모른다는, 군사독재자의 등장에 대한 공산지도층의 뿌리깊은 불안감이「안드로포프」에 유리하게 작용했으리라는 논리다.
이런 몇 가지 사실들을 미루어 볼 때「브레즈네프」후계자 경쟁은 아직 확실한 양상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다만 확실해진 것은「안드로포프」와「체르넨코」,그리고 제3의 다크호스로 모스크바시 당 제1서기인「빅토르·그리신」이 주요 경쟁자란 사실이다.
「그리신」이 주목 받는 것은 그가 모스크바시 당국이라는 강력한 발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체르넨코」와「안드로포프」의 경쟁이 격화 돼 결정이 어렵거나「안드로포프」와 같은 인물의「전력」을 들어 반대의견이 강할 경우 오히려 제3의 인물「그리신」이 타협의 소산으로 등장 할 수도 있는 것이다.<본=김동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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