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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강적' 주5일 근무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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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한국인들의 '국민 취미'라면 남자의 경우 삼겹살에 소주, 그리고 고스톱쯤이 안 될까요? 아줌마 취미의 으뜸은 단연 TV 드라마 시청이겠고…. 그런 사정인지라 공통 화제가 없고 대화가 썰렁합니다. 보세요. 기껏 모여 아이들 사교육 문제나 아파트 시세 따위로 열 올리다가 금세 시들해집니다. 너나 구분없이 재미없게 사는 거죠."

얼마 전 젊은 공무원으로부터 들은 얘기는 '몰취미 공화국' 대한민국의 초상화로 딱이다. 요즘 10대, 20대? 그들은 인라인 스케이팅.컴퓨터 게임으로 품목 변경을 했을 뿐 내용 빈곤은 여전하다. 그걸 재확인한 게 주5일 근무제 시행을 앞두고 지난달 문화관광부가 발표했던 '국민 라이프 스타일 조사'. 척 살펴보니 한국인은 TV 시청.음주.낮잠.게임.잡담을 소모적 여가활동의 '오적(五賊)'으로 꼽으면서도 막상 거기에만 들입다 매달린다. 노는 법을 모르고 사는 공허한 삶, 그게 우리네 딱한 모습이다.

그점에서 주5일 근무제는 거대한 도전이다. 아니 유사 이래 강적의 등장이라고 봐야 한다. 생각해 보라. 노는 것을 법률이 강제하고 있는 전례없는 상황을 우리는 맞고 있지 않은가. 그것도 어느 날 갑자기 말이다. 막상 우리는 놀아보는 훈련을 받아본 적이 없다. 경제적 궁핍을 벗기 위해 그저 먹고사는 원초적 삶에서 코 박았을 뿐이다. 사람들은 지금 내심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책 '방외지사'로 뜨고 있는 동양철학자 조용헌씨로부터 들은 말은 그래서 음미해볼 만하다.

"5월 말 부산 지역 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이 저를 연사로 초청했어요. 아우성이에요. '밥벌이는 그저 밥벌이일 뿐이라서 사는 게 단조롭다. 처방 좀 내려달라' 제가 이렇게 말했지요. 왕도가 따로 없다. 먼저 당신 삶의 아지트를 구축하라. 즉 다양한 취미와 여가생활의 아이템을 개발하라. 그 다음에 할 일은 그 아지트 사이에 교통로를 뚫어 어울려 함께 노시라."

듣자 하니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여가시간에는 남미의 북을 두드리며 음악을 추구했다. 얼핏 몰취미해 보이는 할리우드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하모니카 연주로 주변을 즐겁게 한다 하고, 가수 마돈나 역시 현대 미술품 컬렉션이라는 우아한 취미를 가꾸고 있다던가? 각자가 삶의 노하우를 가진 주인공들이다. 사람들은 물을 것이다. 그 아지트를 어떻게 구축하느냐고. 그게 우리들 각자의 문제요, 사회적 과제다.

얼마 전 들려온 소식이 이른바 웰빙이었다. '잘 먹고 잘 살자'는 얘기인데, 주5일제의 지금은 또 바뀌었다. '잘 놀고 잘 살자'는 것이다. 따라서 1970년대 구호대로 '싸우면서 건설하며 보람에 살던' 굳어진 체질까지를 바꿔줘야 할 판이다. 인류학자 호이징가가 말한 '호모 루덴스'(놀이 하는 인간)의 시대가 정말 왔고, 삶과 놀이의 일치를 추구해야 할 시점이다. 방법이 따로 있나? 우선 우리 삶을 옥죄어 온 성공주의 이념과 '정답의 삶', 그러나 엄청 때묻은 그 낡은 패러다임을 시원스레 벗어던지는 게 우선일 듯싶다. 그리고 '다양한 답'을 향해 각개약진을 해보자. 상식이지만 그 각개약진이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문화적 접근밖에 방법이 없겠고….

조우석 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