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깊이보기: 흔들리는 한국영화

투자사 관행부터 사라져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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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근 불거진 '강우석 파동'은 몇 해 전부터 이 땅의 영화 기획.제작자들 사이에 조성.확산됐던 크고 작은 위기감에서 비롯된, 다분히 예견된 사건이었다. 이번 파동의 의미는 그 위기감이 비단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 한국 영화를 사랑하는 우리 모두의 것일 수 있다는 현실을 새삼 환기시켰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그동안 관계자들 사이에서만 은밀히 오가던 소위 뒷얘기가 실은 우리 모두와 연관된 공식 사실로 물 위에 떠올랐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한때는 꿈의 대박으로 여겨졌던 200만, 3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고도 돈방석에 앉기는커녕 수지 타산조차 맞추기 힘들다니, 어찌 위기를 들먹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과도한 제작비 상승과 그로 인한 수익률 저하 등 위기의 근본원인에 대해선 왈가왈부하지 않으련다. 문제는 현실적으로 위기를 풀어나가기 어렵게 돼 있다는 점이다. 기획.제작에서 상영.수용에 이르는 영화산업, 나아가 문화 전 분야에 걸친 구조적 문제점이 워낙 크고 심각하기 때문이다.

위기의 진짜 원인은 한국 영화산업의 주요 견인차였던 멀티플렉스의 급팽창과 그에 수반된 '광역 개봉(Wide Release)'이다. 지독한 역설이지만 그것이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다. 전국 200~300개, 나아가 그 이상의 스크린을 점령하려면 그만큼의 영화 프린트가 필요하고, 그로 인해 당장 몇 억원의 부대비용이 발생한다. 그것은 곧 마케팅비와 총제작비의 증가로 나타난다.

그뿐만 아니다. 어떤 영화 텍스트건 으레 그에 걸맞은 외양과 규모 등을 지니게 마련이다. 스타도 기용돼야 하고, 화려한 스펙터클을 구현하기 위해 다양한 특수효과 따위도 동원돼야 한다.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이른바 블록버스터급 대형영화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유통되는 이유다. 투자자들이 거의 맹목적으로 스타 캐스팅을 투자의 전제로 내세우는 까닭도 그 때문이고.

작금의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당장 투자사의 일방적이고 무조건적인 스타 캐스팅 요구부터 재고.중단돼야 한다. 하지만 어디 그게 가능한 소망인가. 광역 개봉이 관행이요, 대세인 한에선 말이다.

그럼에도 실마리는 거기서부터 풀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일 것이(라는 게 내 솔직한 견해)다.

전찬일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