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정부·여당 스스로 갈피 못 잡는 부동산 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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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부동산 정책을 둘러싼 혼선이 갈수록 도를 더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6일 당정협의에서 수도권에 중대형 아파트 공급을 늘리기로 했다. 당정협의 직후에 채수찬 열린우리당 정책위부의장이 밝힌 내용이다. 그러나 청와대는 하루 만에 정부 정책으로 합의된 것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청와대의 고위관계자는 나아가 "중대형 아파트의 공급 확대는 원론적인 수준에서 언급된 것일 뿐 세금중과를 통한 투기수요 억제가 부동산 정책의 기본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한덕수 경제부총리는 정례브리핑을 통해 "공급 일변도의 정책은 투기를 인정하는 것"이라며 "공급과 수요관리를 조화시켜 특정지역을 중심으로 오르는 가격을 안정시키는 것이 부동산 정책의 기본 방향"이라고 밝혔다.

대체로 당 쪽에서는 공급을 늘려 부동산값을 잡자는 것이고, 청와대와 정부 쪽에서는 수요억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그러나 실제는 어떤가. 지난해 10.29 대책 이후 정부가 일관되게 밀어붙인 부동산 정책은 오로지 세금중과와 규제를 통한 수요억제뿐이다. 수요가 몰리는 중대형 아파트의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시장의 요구는 서민주택 공급이 우선이라는 논리에 밀려 한 번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경제부총리가 투기조장책이라고 주장하는 이른바 공급 일변도의 정책은 써 본 적도 없었고, 앞으로 써 볼 의향도 없어 보인다. 그러기에 중대형 아파트 공급을 늘린다는 당 쪽의 발표에 청와대와 정부가 펄쩍 뛰고 나선 것 아닌가.

부총리는 또 공급확대책의 일환으로 거론되는 신도시 건설이 투기수요를 불러일으키는 쪽으로 작용한다는 엉뚱한 주장도 폈다.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공급을 늘리는 정책이 투기를 인정하거나 조장한다는 해괴한 논리는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지 궁금하다.

국민은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부동산 정책에 대한 온갖 언급에 식상했다. 이제 더 이상 복잡한 논리로 국민을 헷갈리게 하지 말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부동산 문제에 대통령을 포함해 온 정부가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할 일이 아니다. 그것 말고도 정부가 힘을 쏟아야 할 다급한 경제현안이 많지 않은가. 정부 스스로 주장하듯이 부동산값 상승이 특정 지역에 국한됐을 뿐이라면, 투기 때문에 서민 주거안정이 위협받고 있다는 근거없는 말로 국민을 불안하게 할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