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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 속살 바꾸는 남대문 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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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남대문 시장이 달라졌다. 한국의 대표적인 의류 시장에서 액세서리.안경.수입잡화.아동복 전문 매장 등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전통적인 의류 상가 명성을 동대문 시장에 넘겨준 셈이다.

주류를 이뤘던 영 캐주얼 의류 점포는 거의 사라졌을 정도다. 기존 캐주얼 의류 상가들은 액세서리나 잡화 상가로 변신했다. 여성캐주얼 중심이던 청자상가에도 잡화점이 많다.

파티상가와 MT상가도 각각 안경 전문 상가와 수입품 상가로 바뀌었다. 일본 수입 의류를 취급하던 남대문 무역센터는 액세서리 전문 매장으로 바꿔 상가를 분양 중이다.

지난달 28일 서울 남대문 시장 이랭땅 상가 2층. 한평 남짓한 3백여개의 점포마다 각종 액세서리로 가득했다. 상인들은 점포를 찾은 고객들에게 액세서리 상품을 설명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다. 물건을 사러 온 사람 가운데는 러시아.미국.남미 등 외국에서 온 무역상들도 많다.

브루나이에서 온 모르니 투아(40)는 액세서리 샘플을 넣을 커다란 봉투를 들고 하루종일 매장을 둘러봤다. 그는 이틀 동안 1천5백달러어치의 브로치와 스카프를 구매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인도.태국 등 다른 나라와도 거래를 하지만 액세서리만큼은 한국 남대문시장 제품들의 디자인과 품질이 가장 뛰어나다"고 말했다. 6년간 남대문 시장과 거래해왔다는 그는 최근 이곳의 상인들이 훨씬 친절해졌다고 말했다.

투아씨는 "상인들이 친절해졌을 뿐 아니라 시장 전체의 매장도 이전보다 깨끗해졌고 일부 매장들은 인테리어를 현대화한 곳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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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시장 한계' 벗어나기 몸부림=남대문은 도매와 소매의 판매 비율이 70대 30 정도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60대 40으로 변했다. 상인들을 상대로 도매거래를 하던 시장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소매시장으로 점차 바뀌고 있는 것이다.

또 할인점.백화점.홈쇼핑 등이 많이 생기면서 시장이 위축됐기 때문이다.

한솔아동복상가 운영위원회 전태양(37)씨는 "4~5년 전만 해도 고객 일인당 평균 구매량이 열벌쯤이었으나 요즘엔 두세벌 정도로 줄었다"며 "최근 외환위기 때보다 경기가 더 나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고 설명했다.

잘 나가는 액세서리 시장도 중국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액세서리 전문점 S점포의 이모(32)씨는 "일부 점포들은 아예 중국으로 생산 공장을 이전했으며 기술이 좋아진 일부 중국인들은 남대문의 디자인을 그대로 베껴 제품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남대문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한 다각적인 방안이 마련됐다.

남대문 시장은 오는 7월 종합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할 예정이다. 서울시가 추진하는 재래시장 활성화 정책에 따른 전자상거래 시범 사이트다.

상가별 인터넷 사이트도 활성화되고 있다. 남대문무역센터는 약 8천7백개 지방 소매점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전단지 발송 등을 통한 직거래를 추진하고 있다. 또 해외 전시회 참가를 통해 직접적인 홍보 활동도 구상 중이다.

서비스 개선 작업도 한창이다. 영창상가는 최근 승객용 8인승 엘리베이터를 설치했다. 지하1층에서 5층까지 운행된다.

이 상가의 김경만 번영회장은 "3층에 애견용품 전문 도매상을 분양하면서 층계를 개조해 엘리베이터를 만들고 외벽과 간판을 보수했다"며 "소비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아동복 상가인 포키아동복은 어린이날을 맞아 5월 5일까지 매장을 찾는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준다. 구매 금액에 따라 세면도구 세트.풍선.막대사탕 등을 증정한다.

또 대부분의 혼수.침구 매장들은 구매한 물품을 무료로 집까지 배달해 준다. 제품을 한지에 정성스럽게 포장해 주는 등 백화점식 서비스를 시작한 곳도 생겼다.

남대문은 지난해 중구청에서 20여억원의 예산을 받아 도로 포장 공사를 끝냈다. 또 머지않아 가로등 설치 작업을 할 예정이다. 2백여개의 가로등이 생기면 어두웠던 남대문의 밤풍경이 낮처럼 환해진다.

상가 관리회사인 남대문 주식회사 측은 시장 입구에 상징 조형물을 세우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이 조형물은 남대문 시장을 찾는 외국인들을 염두에 둔 것이다. 남대문 시장의 이미지를 높이고 기억할 만한 이정표를 만들기 위해서다.

남대문 시장의 고질적 문제점으로 꼽혀온 주차장 확보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남대문 본동 상가는 최근 재개발 계획에 들어갔다. 건물이 낡고 부실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주차장을 넓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불편을 없애기 위해서다.

남대문주식회사 백승학 과장은 "상인들의 60% 동의를 얻으면 재개발이 가능한데 이미 59% 이상의 상인들이 동의해 곧 재개발에 착수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아직도 원하는 건 다 있는 시장=남대문은 국내 최대 규모의 종합시장이다. 의류.안경.식품.문구.꽃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다.

특히 대도지하상가.E동수입상가 등 수입 상가들은 최근 해외 유명 브랜드 제품과 가구.인테리어의 비중을 더 늘렸다. 소비자들의 기호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면서 '남대문 시장에선 세계 각국의 물건을 다 살 수 있다'는 명성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주부들은 이곳의 아동복 코너를 많이 찾는다. 서울 응봉동에 사는 주부 김희수(33)씨는 철이 바뀔 때마다 아이들의 옷을 사기 위해 남대문 시장에 온다.

시중보다 40~50% 이상 싼 가격에 질이 좋은 옷들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철보다 두달 이상 빨리 와야 원하는 물건을 살 수 있다. 도매가 중심인 만큼 제품 회전율이 높기 때문이다.

김씨는 "동대문.남대문.백화점 등 모든 의류매장을 다녀봤지만 아동복은 남대문이 가장 싸고 질이 좋다"며 "오랜 장사 경험에서 나온 안목으로 내 아이에게 적당한 옷들을 척척 골라주는 상인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이곳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주부 강민희(35.서울 도곡동)씨는 백화점에서 1만원에 산 복주머니를 남대문 수입상가에서 6천원에 샀다.

강씨는 "다른 곳에서 찾기 어려운 것도 남대문 수입상가에서는 찾을 수 있다"며 "조금만 발품을 팔면 반 이하의 가격에 같은 물건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안경도 남대문 시장의 강점이다. 1백여개의 남대문 시장 내 안경 점포들은 수만종의 안경을 확보하고 있어 대부분 제품을 한두시간 안에 만들어 준다. 안경은 일본인 등 외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품목이기도 하다.

남대문 시장에서 만난 일본인 관광객 노부토 니시무라(42.여)는 "남편의 선글라스를 일본의 5분의1 가격에 샀다"며 "남대문 시장이 좀 복잡하고 정신없긴 하지만 좋은 물건들을 싸게 살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갈치골목.순대국밥 골목.칼국수 골목은 남대문의 대표적인 먹을거리가 있는 곳이다. 고급 음식점 같은 서비스를 기대할 수 없지만 맛에서는 어떤 음식점에도 뒤지지 않는다.

노점상들은 평일 오후 5시 이후부터 10시까지 볼 수 있다. 도매상들은 오전 6~7시부터 오후 4~5시까지만 문을 연다. 의류상가는 밤 12시부터 장사를 시작한다. 일요일은 대부분 매장이 문을 닫는다.

박혜민 기자, 사진= 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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