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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현 전 사장의 소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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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오강현 전 가스공사 사장은 공기업 사상 최초 기록을 두 개나 만들었다. 첫째는 임기를 1년6개월 남겨둔 상태에서 3월 31일 주주총회에서 해임의결된 일이다. 오 전 사장이 5월에 주주총회 무효 확인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법원에 낸 것도 공기업에서 처음 발생한 일이다.

사건의 발단은 '평일 골프'였다. 지난해 11월 18일은 목요일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남미를 순방 중이었다. 이날 오 전 사장은 거래처인 민자발전소 사장들과 골프를 쳤다. 가스공사 사업계획에 대한 브리핑도 겸한 자리였다. 전임 사장 시절부터 매년 한 차례씩 갖는 모임으로, 업무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총리실 단속반엔 이런 설명이 통하지 않았다. 대통령 해외 순방 중에 평일 골프를 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 무렵 오 전 사장은 가스공사 구조조정과 가스 직도입 등 정책을 놓고 산업자원부와 대립하고 있었다. 자회사 사장 등 인사 문제 때문에 산자부 고위층과도 사이가 틀어진 상태였다. 이때부터 청와대와 총리실이 개인 경비까지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는 게 오 전 사장의 주장이다. 감사원도 가스공사에 대한 감사를 두 차례나 했다.

이쯤 되면 오 전 사장에게 그만두라는 사인이 충분히 간 셈이다. 그런데도 오 전 사장은 버텼다. 불명예스럽게 퇴진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지난해 경영평가에서 가스공사가 높은 점수를 받아 연봉(1억1000만원)보다 훨씬 많은 1억9000만원의 성과급을 받을 정도로 경영을 잘했는데 그냥 물러날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공기업의 대주주는 정부다. 가스공사의 경우 한국전력과 서울시 지분까지 합하면 정부 측 지분이 61%에 이른다. 정부가 마음에 들지 않는 공기업 사장을 바꾸겠다고 나서면 그만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부가 제멋대로 사장을 바꾸기 시작하면 회사 경영은 엉망이 될 수밖에 없다.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그래서 정부는 '공기업의 경영구조 개선 및 민영화에 관한 법률(공기업 민영화법)'이라는 긴 제목의 법 4조2항에 "사장의 임기는 3년으로 하고, 정당한 사유 없이 임기 중 해임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부 스스로 자신의 권한 행사 범위를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법과 달리 현실에서는 대주주인 정부가 그만두라는데 이를 거부하고 버티는 공기업 사장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 오 전 사장은 사표를 내지 않았고, 그 결과 공기업 사상 최초로 해임된 사장이 되었다.

가스공사 이사회가 제시한 해임 사유는 평일 골프와 정부 정책에 반한 의사결정, 노조 집회 방치 등이었다. 이사회는 뭔가 찜찜했던지 이런 사유가 공기업 민영화법상 '정당한 해임 사유'인지에 대해 고문변호사 세 곳에 자문을 했다. 해임 사유라고 답한 곳은 한 곳뿐이었다. 한 곳은 해임 사유로 보기 어렵다고, 나머지 한 곳은 법적 다툼이 생기면 가스공사가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고 밝혔다고 한다.

산자부 공무원들은 이 사태를 다른 각도에서 보고 있었다. 오 전 사장은 2000년 특허청장을 마지막으로 30년 공무원 생활을 마친 뒤 한국철도차량(현 로템).기술거래소.강원랜드 사장 등을 거쳐 가스공사 사장에 취임했다. 이 정도면 퇴직 공무원으로서 누릴 만큼 누리지 않았느냐고 말하는 공무원이 많았다. 또 가스공사 사장 자리는 공무원의 연장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형식적으론 사장추천위원회를 거쳐 사장으로 뽑혔지만, 실제론 정부가 임명한 것 아니냐는 얘기다. 그렇다면 정부의 의중을 따르는 게 도리(道理)지, 이를 거부하고 해임을 기다렸다가 소송을 내는 게 공복(公僕)의 자세냐고 반문한다.

사표 제출을 거부한 오 전 사장의 처신이 적절했는지는 공무원 사회의 관심일 뿐이다. 문제는 법률 위반이라는 의견이 많은데도 해임 의결을 강행한 정부의 배짱이다. 최근 몇몇 공기업 사장 선임 때도 사장추천위원회는 허울일 뿐, 정부가 임명했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오 전 사장의 소송이 정부가 법을 제대로 지키고 공기업 인사를 보다 신중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세정 경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