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이반환후의 중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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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982년 4월 25일은 중동평화정착에 신기원을 이룩한 날이다. 1967년 제4차 중동전으로 이스라엘이 점령했던 시나이반도가 이집트에 완전반환됨으로써 적어도 중동사태의 한 불안은 제거됐다.
이스라엘군이 마지막으로 국경을 넘어 사라지자 「무라바크」이집트대통령은 「베긴」이스라엘수상에게 전화를 걸어 두 나라 사이의 「영원한 평화」를 다짐했다. 국경도시 라파와 샤름 엘셰이크에서는 이집트국기가 게양됐고 카이로를 출발한 평화의 횃불도 때를 맞추어 도착했다.
15년동안 두 나라 관계를 지배했던 「뺏긴자와 뺏은자」사이의 의혹과 즈오는 일단 가라앉은 셈이다. 이제 두 나라는 국경선 확정이라는 좀 까다로운 문제를 남겨두고 있으나 평화구조를 정착시킨다는 대국적 견지에서 보면 사소한 문제다.
시나이반도의 반환은 78년 캠프데이비드협정의 1단계 성공을 뜻한다. 당초 이 협정이 맺어진 뒤에도 과연 약속대로 이스라엘이 철군할지 의구심이 팽배했으나 3면이 국경을 아랍적대국들에 둘러싸인 이스라엘로서는 어느 한쪽이라도 화해를 이룩하는 것이 국가안보에 이롭다는 판단아래 약속을 이행한 것이다.
이제 중동사태는 팔레스타인 자치문제 해결이라는 본원적인 문제에 접근할 단계에 있다. 이것은 캠프데이비드협정의 2차 목표이기도 하며 항구적인 중동평화의 관건을 지닌 문제다.
캠프데이비드협정은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 팔레스타인의 자치를 허용하도록 규정했으나 「자치」에 대한 이스라엘과 아랍권의 정의는 서로 다르다. 결론적으로 말해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영사안에서의 팔레스타인주민 자치를 상정하고 있으나 아랍권은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생각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인으로서는 48년 이스라엘건국과 함께 축출당한 주민이 1백80만명에 이르며, 아직도 요르단강 서안에 75만명의 팔레스타인주민이 거주하고 있는 점을 들어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 창설은 당연하다고 본다.
이집트도 이 점만은 아랍형제국들과 공동보조를 취할 것이 확실하며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위건아랍국도 시나이반환이후의 중동평화방안으로 점진적인 독립국가의 창설을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로서는 요르단강 서안이 이스라엘안보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전략요충지라는데서 팔레스타인국의 창설은 한사코 반대한다. 이스라엘은 오히려 유대계 주민을 이 지역에 이주시킴으로써 이 지역을 영구합정하려는 속셈이 아닐까하는 아랍국들의 의혹을 사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이 두려워 하는 것은 레바논남부에 근거지를 둔 PLO, 즉 팔레스타인해방기구의 존재다. PLO주민들이 요르단강 서안에 정착할 경우 수십년래의 증오관계에서 오는 국경충돌이 불가피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최근 이스라엘이 공군기를 동원, 남부레바논을 강타한 것도 이런 점에 연유한다.
그러나 이같은 이스라엘의 의도가 과연 성공할지는 매우 불투명하다. 이미 세계 각국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으며 「아라파트」PLO의장은 보다 광범위한 지대를 얻기위해 외교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종전에는 PLO를 테러집단으로 여기던 미국도 점차 현실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단지 그것이 PLO같은 강경파를 팔레스타인주민의 유일한 대표기관으로 볼지, 또는 보다 온건한 집단의 등장을 기다려볼지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밝혀질 것이다.
시나이반도의 반환으로 이룩된 중동평화구조는 이제 팔레스타인 문제에 어떤 해결책이 제시되느냐에 따라, 영속적인 평화일지 단기간의 소강상태일지가 판가름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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