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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향 가득한 질마재, 꽃처럼 쏟아져내린 시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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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미당시문학관 건너편 서정주 시인의 묘소가 있는 언덕은 지금 국화꽃이 절정이다. 사진 왼쪽부터 박형준·이경철·윤재웅·송하선·신경림·나희덕씨. [고창=프리랜서 오종찬]

미당(未堂) 서정주(1915∼2000) 시인은 평생 열다섯 권의 시집을 펴내며 900편이 넘는 시를 남겼다. 잘 알려진 ‘국화옆에서’ 말고도 꽃에 관한 시를 많이 썼다. 1972년에 출간된 『서정주 문학전집』에 실린 시 ‘꽃’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쏟아져 내리는/기총소사 때의/탄환들 같이/벽(壁)도/인육(人肉)도/뼈다귀도/가리지 않고 꿰뚫어 내리는/꽃아.’

 벽과 같은 물리적 장벽도, 영혼과 감수성이 없다면 한낱 고깃덩어리에 불과할 인간의 둔한 육체도 꿰뚫어 버린다는 데야 꽃의 위력 앞에 두 손 들고 항복할 수 밖에 없다.

 국화꽃이 만개한 계절 전북 고창 미당시문학관에서 1·2일 이틀간 열린 올해 미당문학제는 그런 꽃의 매혹 앞에, 그리고 꽃의 위력을 언어로 포획하려는 시인들의 노력 앞에 바쳐진 행사다.

 올해 미당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나희덕(48) 시인에 대한 시상식, 합평회·백일장 등 일반인 참가자를 위한 시인학교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민속놀이·장터 등 문학관 주변에서 열리는 질마재문화축제(10월 24일∼11월 3일)와 어우러져 문학행사를 뛰어 넘은 지역 축제로 자리잡았다.

 1일 시상식에서 나씨는 “수상 소식을 처음 접한 순간 미당 선생이 싱긋 웃으며 축하한다고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미당은 질펀한 『질마재 신화』의 세계와 동양적 형이상학을 추구한 『신라초』 사이, 그 까마득한 진폭을 오르내리며 유유자적 놀다간 분이었다”며 “앞으로 내 안에서도 미당의 시와 같은 능청스러운 노래가 나올지 기대된다”고 했다.

  나씨는 수상작 ‘심장을 켜는 사람’을 차분한 목소리로 낭송했다.

 ‘(…) 건기의 심장과 우기의 심장/아침의 심장과 저녁의 심장//두근거리는 것들은 다 노래가 되지요 (…)’.

 노래가 된 시가 가을 오후의 공기 속으로 퍼져 나갔다.

 문학제에는 시인 신경림·송하선·박형준·함명춘·김성규·박소란·이소호·휘민·김유자·권민자씨, 문학평론가 이경철씨, 동국대 윤재웅 교수(미당기념사업회 사무총장) 등이 참석했다. 미당시문학관 이사장을 맡고 있는 선운사 주지 법만 스님, 김춘진 국회의원, 박우정 고창군수, 이상호 고창군 의회 의장, 조병균 질마재문화축제 위원장 등이 축사를 했다.

 2일 백일장에서는 ‘가을 모녀’를 쓴 나지환(20·동국대)씨가 장원을, 강혜원(17·안양예고)·조승운(23·조선대)씨가 차상을, 임희준(20·동국대)·이자민(22·조선대)·이민숙(55·전주한옥마을 해설사)씨가 차하 상을 각각 받았다.

고창=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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