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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속 첨단 … 시간 초월한 수퍼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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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9호 09면

티포 6CM. 뒤에 V4 스포트 자가토가 보인다.
엔초 페라리 상설 뮤지엄

이탈리아 수퍼카의 살아있는 역사 마세라티(Maserati)가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아 모데나(Modena)시의 본사 바로 옆에 위치한 엔초 페라리(Enzo Ferrari) 뮤지엄에서 기념전(6월 12일~2015년 1월 31일)을 시작했다. 전시를 위해 지난 1세기 동안 출시된 경주용 차, 일반 자동차 중 브랜드를 대표하는 가장 상징적이고 가치가 높은 30여 대를 엄선했다. 이 중요한 차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중 21대는 내년 1월 31일까지 엔초 페라리 뮤지엄에 전시되고 10대 정도는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100주년 행사를 위해 사용된다. 이 기념적인 전시회에 중앙SUNDAY S매거진이 다녀왔다.

스포츠카 마세라티 탄생 100주년 기념전을 가다

우선 드는 궁금증 하나. 마세라티의 100주년 전시를 왜 엔초 페라리 뮤지엄에서 할까. 페라리는 마세라티의 경쟁자 아니었나. 이를 위해 마세라티와 페라리의 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마세라티가 없었다면 페라리는 자극을 받지 않아 전 세계를 놀라게 한 훌륭한 차들을 만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마세라티는 엔초 페라리가 파일럿으로 활동하던 1930년대에 이미 삼지창 로고를 앞세워 또 다른 이탈리아 레이싱카 브랜드인 알파 로메오와 경쟁중이었다. 페라리가 그의 첫 자동차 815를 만들고 있을 때 마세라티는 인디애나폴리스 경기에서 우승할 정도로 이미 인정받은 스포츠카 브랜드였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마세라티와 페라리는 모데나(마세라티)와 마라넬로(페라리)라는 근접한 지역에 공장을 두고 각각 삼지창과 말 로고를 앞세워 자존심 싸움을 시작했다. 판지오 같은 파일럿은 두 경쟁사의 차를 몰아 포뮬러 원에서 함께 우승하기도 했었다.

이 두 브랜드의 스포츠카 제작에 대한 경쟁이 시들해진 것은 1960년대다. 페라리가 피아트 그룹의 도움을 받아 계속적으로 스포츠카 제작에 전념할 무렵 마세라티는 주인이 바뀌면서 경주용 차 제작을 포기하고 일반 양산차로 방향을 바꾼 뒤부터다. 마세라티는 93년 피아트 그룹에 인수된 뒤 2003년 콰트로 포르테를 선보이면서 과거의 명성을 되찾았다. 두 브랜드는 이제 ‘형제’가 된 것이다.

100년의 명성과 가치 따져 고르고 고른 21대
모데나시 기차역에 내려 왼쪽으로 500m 정도 걸어가니 2012년 개관한 노란 벽과 지붕의 엔초 페라리 뮤지엄이 나왔다. 이곳은 페라리를 창립한 엔초 페라리(1898~1988)의 생가이며 그의 아버지가 19세기 말까지 정비소로 사용했던 곳이다. 뮤지엄으로 리모델링하면서 엔초 페라리의 개인용품, 페라리의 희귀 모델과 알파 로메오의 상징적인 차들을 상설 전시해 놓았다.

입장하자마자 2500 평방m의 탁 트인 넓은 공간에 마세라티의 역사적인 자동차 21대가 한눈에 들어왔다. 방문객들은 이탈리아와 독일, 프랑스에서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들이 대부분이었다.

100년간 출시된 멋진 자동차들 중 21대만 고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전시 큐레이터이며 1937년부터 67년까지 마세라티 사장이었던 아돌포와 오메르 오르시(Adolfo & Omer Orsi) 부자의 3세손인 아돌포 오르시 주니어(Adolfo Orsi Jr)도 마찬가지였다.

“마세라티의 역사를 빛낸 많은 차들 중 몇 대만 선택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차들이 ‘꿈의 주차장’에 적합할지 상상해보았고 기술적, 미적 측면은 물론 역사적으로 브랜드에 가장 상징적인 모델을 골랐습니다. 다행히도 자동차 수집가들의 도움을 받아 그들이 소유한 차들을 전시할 수 있었는데 그 중에는 대서양을 건너온 차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현재 유럽에서는 보기 힘든 모델들입니다.”

큐레이터의 선정 기준이 어떻든 간에 전시장 방문자에게 중요한 것은 차의 스타일, 즉 마세라티에 열광하게 하는 디자인 아닐까. 우리는 마세라티의 아름다운 곡선 뒤에 숨은 피닌파리나(Pininfarina), 투어링(Touring), 피에트로 프루아(Pietro Frua), 베르토네(Bertone), 기아(Ghia), 주지아로(Giugiaro), 비냘레(Vignale), 자가토(Zagato), 그리고 현재 마세라티의 디자인 센터인 FCA까지 자동차를 만들어온 디자이너들의 공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를 강조하듯 FCA 스타일 센터의 팀장 로렌조 라마쵸티는 전시 오픈식에서 “마세라티 스타일 센터는 100년 동안 이어온 영광에 강한 책임을 느끼며 이탈리안 스타일 전통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을 바탕으로 전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1인승 레이스카4CLT-48

첫 경주용차 티포, 최고의 클래식카 V4
전시의 시작은 마세라티의 첫 경주차인 티포(Tipo) 26(1926년 제작)으로 시작한다. 아직도 엔진 시동을 거는 손잡이가 앞부분에 달려있는 티포 26은 손으로 두드려 차를 만들던 제작자들의 장인정신이 생생하게 배어있는 차다.

우측에는 전설의 V4 스포트(Sport)가 있었다. 우고 자가토(Ugo Zagato)가 디자인한 V4 스포트는 레이싱 카의 성능을 향상시키기 위해 8기통 엔진 두 개를 V자 형태로 배열해 16기통으로 만든 획기적인 모델이다. 비행기 제작공장에서 일했던 자가토의 기술적 경험이 자동차 디자인에 적용되어 가볍지만 볼드하고 아름다운 곡선의 자동차를 탄생시켰다. 포뮬러 원 파일럿이었던 바코닌 보르자키니가 이 차를 몰아 1929년 크레모나 플라잉 10km 경기에서 평균시속 246km라는 당시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 V4는 2014년 콩코르소 델레간자 디 빌라 데스테에서 최고의 클래식 카로 선정됐다.

이 두 ‘전설’을 지나 경사진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33년부터 35년까지 제작된 마세라티 최초의 1인승 레이싱카 티포 8CM, 48년부터 3년동안 각종 레이스에서 23회나 우승한 1인승 레이스카 4CLT는 당장이라도 새 경기에 출전할 준비를 마친 듯 보였다.

그 뒤로 250F를 만날 수 있었다. 아르헨티나의 전설적인 파일럿 후안 마누엘 판지오가 몰아 54년과 57년 두 차례에 걸쳐 포뮬러 1 경기에서 승리한 스포츠카이며 마세라티 역사상 가장 위대한 레이싱카로 여겨지는 차다. 슬쩍 만져보니 판지오의 숨소리와 경기장의 함성이 들리는 듯했다.

전시장 중앙에 눈에 띄는 흰 색 차가 하나 있었다. 58년 몬자 500마일 대회를 위해 만든 레이싱카 엘도라도다. 당시 유명했던 아이스크림회사 ‘라 엘도라도’가 스폰서한 차로 레이싱과 관련 없는 회사도 레이싱카를 지원할 수 있다는 개념을 처음 선보였다. 뒷부분이 마치 토실토실한 아기 엉덩이같은 풍만한 곡선의 엘도라도는 바닐라 아이스크림 같은 하얀 색 몸체에 카우보이가 그려져 있어 마치 만화에서 빠져나온 듯 했다.

티포 60 버드케이지(Tipo 60 Birdcage, 1959 년)는 기술적 측면에서 마세라티 역사상 가장 중요한 모델 중 하나다. 새장처럼 생긴 섀시(기계의 뼈대 구조) 때문에 버드케이지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알려진 이 차는 200개 이상의 작은 튜브를 용접해 만든 구조물을 핸들 앞에 엽기적으로 보이게 삽입했다. 혁신적인 버드케이지 튜블러 섀시는 모노코크 섀시보다 가볍지만 훨씬 견고하고 파워풀해 미국과 유럽의 차 애호가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다.

주지아로가 디자인한 마세라티의 실험작 MC12 코르사(Corsa) 주변은 그 압도적인 디자인과 성능, 유명세 덕분에 방문객들로 항상 북적거렸다. 이 모델은 2004년 출시된 MC12의 후속 모델이다. 차체의 단단함은 유지하면서 무게를 최소화 시키기 위해 본체는 카본파이버로, 서브 프레임은 알루미늄으로 만들어 기존 제품보다 380kg이 덜 나가게 제작됐다. 무게가 1150kg밖에 나가지 않지만 V12기통, 5998cc 배기량의 엔진, 최대 766마력을 자랑한다. 밑부분이 낮아 도로주행이 불가능했는데 튜닝을 바꿔 가능해졌다.

로드카는 65년 제작돼 이탈리아 배우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1924~1996)가 소유했던 콰트로포르테를 비롯해 피닌파리나가 디자인한 A6 1500(1947년), 그란투리스모의 첫 모델이 된 3500 GT(1957년), 피닌파리나가 디자인한 일명 ‘마세리타’라 불렸던 마세라티의 첫 로드카 A6 1500 등이 보였다.

부메랑

미래형 외관, 최고 컨셉트카 ‘부메랑’
그런데 이곳에 어릴적 동생이 갖고 놀던 미니카와 똑같이 생긴 차가 전시돼 있었다. 세계에 단 하나밖에 없는 컨셉트카 부메랑(BOOMERANG·1972). 주지아로가 디자인한 이 차는 마치 한 선에서 납작한 사다리꼴로 서서히 뽑아낸 듯한 미래형의 독특한 외관 디자인과 핸들 중앙에 삽입된 계기판(대쉬보드) 때문에 수많은 수집가들이 몸살을 앓게 하는 차다. 공상과학 영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이 생긴 이 차가 과연 움직일까 궁금해하며 차의 곳곳을 주의깊게 관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 부메랑 디자인은 후에도 주지아로에게 많은 영감을 주어 마세라티의 메락(Merak), 로투스의 에스프리(Lotus Esprit), 들로리언(DeLorean) DMC-12 등을 탄생시켰다. 71년 토리노 모터쇼에서 프로토 타입을 공개하고 72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완성된 컨셉트카로 등장한 부메랑은 로드카로 제작됐지만 실제로는 전시용으로 일반인들에게 더 많이 공개됐다. 74년 바르셀로나 모터쇼에서 한 수집가에게 팔린 후 90년 파리 바가텔 콩쿠르에서 약간의 변형된 모습으로 새 주인을 통해 선보였으며 2000년 몬트레이 클래식 자동차경주에서 다시 세상에 나왔다. 2013년 10월 프랑스 니스에서 포착돼 세상을 떠들썩하게도 한 부메랑은 2014년 명품 브랜드 루이 비통의 가을 컬렉션을 위한 광고사진에 사용됐다.

마세라티는 19개의 동영상을 제작해 30분마다 전시장 천정과 벽면에 상영하여 방문자들에게 회사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동시에 지난 100 년간 제작된 차들, 카 레이스에서 얻은 영광, 그리고 숨은 제작자들을 간접적으로나마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지하에는 마세라티 전성기의 레이싱 포스터를 따로 모아 과거의 영광을 간접적으로나마 접하게 했다.

마세라티 100주년 전시를 방문한 사람들은 엔조 페라리 뮤지엄도 동시에 관람할 수 있다. 마라넬로의 페라리 뮤지엄까지 관람할 수 있는 표를 구입하면 뮤지엄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로 당일 이동이 가능하다.

모데나(이탈리아) 글·사진 김성희 중앙SUNDAY 유럽통신원 sunghee@stella-b.com, 사진 마세라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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