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경제위기 풀려면 가계 빚부터 줄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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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빚으로 지은 집
아티프 미안·
아미르 수피 지음
박기영 옮김, 열린책들
320쪽, 1만5000원

2007~2009년 미국의 일자리 800만 개가 사라졌다. 실업률은 10%를 넘어섰다. 가계 자산 6조 달러가 증발했다. 주택 시장의 거품이 붕괴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의 주식 시장 붕괴와 비교해보자. 기술주 거품이 터지면서 가계 자산 6.2조 달러가 날아갔다. 물가 상승을 고려했을 때 파장은 더 컸어야 한다. 그러나 실업률은 6% 정도였고 소매 지출은 오히려 5% 증가했다.

 둘의 차이는 뭘까? 저자들은 ‘빚’을 지목한다. 2000년대 중반엔 미국 가계 소득의 하위 계층, 즉 가난한 사람들이 지나치게 많은 빚을 지고 집을 샀다. 그런데 집의 가치가 급격히 떨어졌다. 결국 빚을 진 저소득층에게 직격탄이 떨어졌다. 소비 급감, 생산 감소, 대규모 실업이라는 악순환이 일어났다. 반면 기술주의 거품 붕괴는 주식 투자를 하던 상대적 고소득층에게 타격을 입혔다. 대침체가 아닌 불황 정도에 그칠 수 있었던 이유다.

 따라서 저자들은 최근 경제위기의 해결을 부채조정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본다. 채무 계약의 재조정을 통해 원금을 경감시켜 주거나, 이자 부담을 덜어주는 정책 등을 제안한다. 도덕적 해이에 대한 방어도 한다. 집값이 올라 이득이 생기면 이 또한 채권자·채무자가 공유하는 ‘책임 분담 모기지’라는 방식을 제안한다. 이렇게 하면 채권자·채무자 모두 부채에 대해 신중할 수 있다. 결국 다 같이 한 배를 타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들은 한국의 가계 부채 증가세를 지적하며 “2000년대 미국에서 있었던 우려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소득 주도, 부채 주도 성장론의 논의가 뜨거운 현 시점에서 들어볼 만한 주장이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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