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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 장씨(제자 초정 권창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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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장씨는 우리나라 9번째 대성. 75년 국세조사에서 전국에 13만7전2백45가구, 약60만이 분포한 것으로 나타났다.
본관은 문헌상 40여 본이 전하나 현존하는 것은 30여 본.
그중 고려중엽 아라비아인이 귀화한 덕수 장씨와 중국에서 건너온 태원·절강·농서장씨 등 4본 외의 모든 장씨는「한 뿌리」라는 것이 통념이다.
그 중에도 인동 장씨는 수에서나 명성에서나 단연 장씨의 대표격. 장씨하면 으례 인동 장씨를 연상할 만큼 융성을 누려온 가문이다.
시조는 고려 초 삼중대 광신호위상장군을 지낸 장김용. 그로부터 현재 38대까지 세계가 이어진다.

<도시 조엔 의견 달라>
인동에서 결성·울진 등 20여 본이 분적해 본관을 따로 쓰고 있으나 크게는 역시 인장. 분적한 집안 세서도 일부는 그대로 인동을 본관으로 쓰는 등 장씨의 계보는 대성답게 복잡하다.
덕수 등 4본관을 뺀 장씨가 「한 뿌리」라는 것은 대부분 인정하면서도 정작 도시 조가 누구냐는 데서는 종파간에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
통설은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고려개국에 큰공을 세운 3태수가운데 한 사람인 장정필이라는 설.
지금도 안동에 3태 사묘가 전해져 춘추로 향사가 받들어지고 있으나 정작 인동 본 고장의 장씨들은 근대 이 통설을 부인하고 있다.
인동 장씨가 낳은 거유 장현광(서기 1554∼1637)이 일찌기 이 문제에 대해 『연대나 계보를 헤아릴 수 없어 믿기 어렵다』며 회의를 표시하고 「의이전지」(의심스러운 대로 전하기 만 한다)의 태도를 취했던 것이 그 근거.
그러나 장현광의 사후 영조 대에 편찬된 인동장씨의 첫 족보 등 문헌에는 장정필을 도시 조로, 장금용을 시조로 기록하는 등 엇갈려 논란의 소지를 남기고 있다.
일설에는 저 유명한 청해진대사 장보고가 장정필의 조상이며 장보고의 선대는 중국에서 살았다는 주장까지 있다.
인동본고장의 5파는 최근까지 양론이 맞서 있다가 지난해 종회에서 장금용으로부티 세계를 따지고 장태수 도시조절은 인정치 않기로 결론을 내렸다는 것. 그러나 나머지 종파는 대개 통설을 따르고 있다.
고려대 장씨의 인물 중 장안세는 함흥부사로 있을 때 성천강에 만세교를 놓아 지금도 다리가 전하며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두문동에 들어가 72현에 꼽혔다.
조선조 들어 인동 장씨는 정승1명, 왕비1명, 문과급제자 1백41명의 융성을 누렸다.
정승은 얼굴이 돼지를 닮아 「저두재상」의 일화가 전하는 장순손. 왕비는 수 없이 TV 등 연속극의 주인공이 되고 있는 숙종의 총비 장희빈.
저두재상 장순손은 일찌기 성종 때 과거에 급제했으나 못 생긴 용모 때문에 줄세가 늦었다고 한다. 그가 성주군수로 있을 때 관기하나가 연산군의 채청사에 뽑혀 궁중에 들어가 연산의 총애를 받았다.
이시애 난을 평정하는데 큰 공을 세운 장말 손, 이괄란을 평정란 팔도도원수 장만, 이린좌의 난에 공을 세우고 형조판서를 역임한 장붕익 등 인동장씨는 문무에서 고루 인물들을 배출했다.
문에서 인장을 대표하는 인물은 조선조 중엽의 대성리 학자 여헌 장현광.
선조 28년 학문과 덕행으로 천거돼 보은현감이 되었으나 곧 물러난 뒤 이조판서·대사헌 등 벼슬로 20여 차례 조정에서 부르는데도 나아가지 않고 인동향리에 묻혀 성리학의 연구에 몰두했다. 허목·김응조·김식·선우협 등이 그의 문하. 죽은 뒤 영의정에 추증되고 문강공의 시호가 내려졌다. 「여헌문집」「경위설」 「우주요괄록」 등 저서가 전하며 율곡·퇴계와 또 다른 독자적 성리학설로 근래 일본 등에서도 그의 학설이 연구되고 있다.
그의 양자 노천당 장응일은 「목숨을 걸고 바른말을 하는」간관의 전형으로 전해진다.
이 때문에 출세가 막혔으나 후에 우승지·부제학·대사간까지 올랐다.
광해군 때 권신 김자점을 탄핵하는데 영남유림의 앞장을 섰던 장경우도 여헌의 조카뻘.
인장의 이 「바른말」 전통은 맥을 이루는 느낌이다.
한말 『시일야방성대곡』의 명사설로 일제의 침략정책을 규탄하고 겨레의 각성을 촉구했던 애국언론인 위암 장지연도 인장의 후예. 상주태생이다.

<덕수 4형제 유명>
동아일보 초대주필 설산 장덕수는 인동서 분적해 나간 결성 후예로 황해도·대령이 고향. 와세다 재학시절에는 전 일본학생웅변대회에서 일본인 학생들을 제치고 1등을 차지해 일인들을 놀라게 했을 만큼 뛰어난 웅변술에 문장까지 탁월했다. 정치적 식견과 의교적 능력도 겸비, 해방 후 한민당의 중추로 정국을 리드하다 암살범의 흉탄에 숨졌다.
4형제 가운데 둘째 형 덕준도 언론인. 간도에 특파원으로가 일군의 한국인촌락에 대한 잔학행위를 취재하다 일군에 살해당한 우리 나라 최초의 순직기자다.
아우 덕당은 상해임시정부의 행동대원으로 독립문 동자금을 마련키 위해 중국인 카지노를 털다 20대의 나이로 요절하는 등 3형제가 모두 조국광복에 몸 바친 의열의 집안.
한국일보를 참간하고 경제기획원장관을 지낸 「25시의 사나이」 장기영씨는 또 장씨 종친회 회장직도 오래 맡았다. 경제기획원 장관 재직시에는 차관을 얻으러 온 동문실업인 장모씨에게 『안동 3태수묘를 가봤소. 우리 선조 장태사묘만 허술해서 민망스럽던데…』하고 암시, 묘역을 크게 수리하도록 한 뒤에야 차관도 입서류 결재했다고도 한다.
인동 장씨 중 경파인 장기영씨는 범장의 시조로 장태수를 모시는데 앞장서봤다.
초대 주미대사·부통령을 역임하고 4·19후 수반이었던 장면국무총리와 미군정하 수도청장·초대 외무장관·국무총리를 역임한 창낭 장택상씨도 인장.
사상계발행인으로 50∼60년대 우리 지식인 사회에 큰 영향력을 가졌던 장준하씨는 말년 「반독재투쟁」을 위해 정치에 투신, 고초를 겪기도 했다. 『부정을 범하지 않고는 그럴만한 경제적 능력이 없다』고 자녀들을 모두 대학에 보내지 않았을 만큼 「양심」과 「지조」로 평생을 살았다.
군으로 눈을 돌리면 장씨의 무맥은 무인시조의 후손들답게 화려하다.
5·16당시 육참총장으로 장총리의 절대적 신임을 받았던 장도영씨가 바로 장 총리와 같은 인동종문.
공군에서는 장창국·장지량·장성환씨 등 세별이 빛난다. 모두 참모총장을 역임했다. 해군에서는 장지수씨가 역시 4성 장군으로 참모총장을 역임.
장창국·장지량씨는 퇴역 후 외교관으로 대사직에 있다 물러나, 장창국씨는 국방정책자문위원, 장지량씨는 보라매 회장. 장지수씨는 호남석유화학 사장, 장성환씨는 무역진흥공사 사장직을 맡고있다.
재계에서는 영풍그룹의 장병포씨, 이천전기 장병찬씨, 간국제강 장상태씨, 진노 장익용씨, 고려합섬 장치혁씨 등이 맥을 형성하고 있으며 애경유지 장영신씨가 홍일점의 이채. 단국대총장 장충직씨, 아버지의 뒤를 이은 한국일보 회장 장강재씨 등 각계에 장씨들은 거두재량의 성세다.
오랫동안 장씨 대종회 회장으로 있던 한국일보사주 장기영씨가 작고한 뒤 영풍그룹 회장 장병포씨가 회장 없는 수석부 회장으로 종친회를 이끌고 있으나 오히려 각 지역 파별 종친회가 수보·장학사업 등 활발한 활동을 펴고 있다.

<지명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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