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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토요일 … 우리는 우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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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 주5일 근무제가 확대 시행된 후 첫 번째 휴무 토요일인 2일 저녁 서울 구로공단의 한 인쇄소에서 한 근로자가 휴식을 취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300명 이상 사업장으로 주5일 근무제가 확대 시행된 첫 토요일인 지난 2일 오후 1시.

4500여 개 업체가 입주해 있는 경기도 시화공단은 고막을 울리는 기계음 소리가 요란했다. 입주 업체 대부분이 중소 규모인 탓에 많은 공장들은 이날도 평일처럼 분주히 돌아갔다.

그러나 시화공단 노동자들에게 주5일제는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게 하는 새로운 고민거리로 등장했다.

중장비용 부품제작 업체 ㈜와이즈의 공장에는 내국인과 외국인 노동자 8명이 월평균 130여만원을 벌기 위해 열처리 작업에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생산주임 김근상(27)씨는 "앞으로 토요일 근무를 안 하게 되면 월급이 30만원 정도 준다"며 "주5일제를 부러워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고 말했다. 주5일제가 도입되면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불안한 상황이 된다는 것이다.

주5일제는 2006년 7월에는 100명 이상, 2007년 7월에는 50명 이상, 2008년 7월에는 20명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직원 20명을 둔 ㈜와이즈의 노동자들이 주5일제 혜택을 누리려면 앞으로 3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 상대적 박탈감 커져=부인과 함께 시화공단의 철제 생활용품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이병화(45)씨는 지난달 2일 이후 단 하루도 쉬지 못했다. 이들에게 주5일제는 꿈같은 이야기다.

이씨는 "우리라고 쉬고 싶지 않겠느냐. 그러나 특근과 철야를 하지 않으면 얘들 학비와 생계비 마련이 막연하다"고 털어놓았다.

건설 중장비 부품업체 이사 유모(47)씨는 "대부분 중소사업장은 납기를 맞추기 위해 제때 쉴 수 없는 형편"이라며 "주5일제 적용 대상이 되더라도 고용을 늘리기는 힘들고, 종업원들도 주5일제를 원하는 것 같지 않다"고 설명했다.

◆ 치안수요 오히려 늘어=경찰은 주말에 빈집 등이 많아져 오히려 치안 수요가 늘어나는 바람에 주5일제는 입 밖에도 못 꺼내고 있는 실정이다.

동대문경찰서 혜화지구대 관계자는 "주말 근무에 시간외 수당이 나오지만 액수가 적어 차라리 그냥 쉬고 싶다는 생각이 많다"고 말했다. 경찰은 주40시간 근무를 위해 근무 시스템 등을 바꾸는 등 대책을 찾고 있으나 인원 부족을 극복할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서울 동대문소방서 강상욱(42) 실장은 "24시간 근무 후 하루 휴무를 하다 보니 가족과 함께 놀러간 기억이 없다"며 "인력이 파격적으로 늘지 않는 한 주5일제는 그림의 떡"이라고 밝혔다.

◆ 식당.택시 등은 울상=공공기관.기업체 주변의 식당 등 자영업자들은 '사라진 손님들' 때문에 비상이 걸렸다.

서울 광화문 정부중앙청사 인근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은경(43)씨는 "토요일 매출이 80% 정도 줄었다"며 "가뜩이나 경기가 나빠 힘들었는데 설상가상"이라고 하소연했다.

택시도 주말손님을 빼앗기긴 마찬가지. 23년째 택시 운전을 하는 김동규(59)씨는 "지난달 주말 손님이 줄더니 이번 주말에는 아예 없다"고 말했다.

전국일용근로자협회 강대석(46) 회장은 "주5일제로 가사 일을 직접하겠다는 맞벌이 부부들이 늘어 도우미들의 일자리가 줄고 있다"며 "정규직 노동자들도 투잡스(two-jobs)로 변신해 일용직들의 설 자리가 더욱 좁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호.박수련 기자 <gnomon@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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