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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어, 미술관에 전시품이 없네 … 자연 자체가 작품이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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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위에 떠있는 교회, 오름을 닮은 호텔…. 말로는 설명이 어려운 건축물이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상천리에 모여있다. 그것도 세계적인 건축 거장 안도 다다오(安藤忠雄·74)와 이타미 준(伊丹潤·1937~2011)의 작품이다. 제주의 풍경과 극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는 거장의 작품을 둘러봤다.

1 수미술관. 하늘의 모습이 시시각각 다른 표정으로 물 위에 비치는 것을 볼 수 있다. 2 바람의 잘 들도록 설계된 풍미술관. 3 제주의 자연석과 빛의 극적인 대비가 인상적인 석미술관.

밥을 사먹어야 볼 수 있다 수·풍·석 미술관

고급 주거단지 비오토피아는 건축 명소다. 이타미 준이 설계한 116동 규모의 타운하우스와 미술관 네 곳이 들어서 있다. 그러나 정작 비오토피아를 구경한 사람은 많지 않다. 2008년 완공한 비오토피아 속 미술관은 타운하우스 입주자를 위한 공간이어서 일반인 출입이 통제됐다. 2010년 SK네트웍스가 비오토피아를 인수한 뒤에야 상황이 달라졌다. 비오토피아 안에 있는 레스토랑 손님에 한해 내부를 개방한 것이다.

“레스토랑 왔는데요.” 입구를 막아선 경비에게 레스토랑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제야 닫혔던 문이 열렸다. 비오토피아에선 “밥 먹으러 왔다”는 말이 “열려라 참깨”와 같은 주문이었다. 다음 관문은 식사하기. 이타미 준의 작품을 보기 위해선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해야 했다. 한우 안심스테이크 7만3000원, 제주 은갈치조림 정식 3만5000원. 가장 저렴한 메뉴가 1만8000원짜리 ‘흑돼지 스테이크와 함께 즐기는 카레라이스’였다. 점심 밥값으로 부담스러웠지만, 미술관 입장료를 포함한 가격이라고 생각했다.

식사를 마치고 마침내 비오토피아 안으로 들어갔다. 압권은 수(水)·풍(風)·석(石) 미술관이었다. 2006년 김수근 문화상을 수상한 세 미술관은 하나하나가 예술작품이었다. 세 미술관엔 전시품이 따로 없었다. 수미술관에는 고인 물과 그것에 비친 제주의 하늘이, 석미술관에는 양지에 놓인 제주도 자연석이 전부였다. 이곳에선 물·바람·돌 등 제주의 자연 자체가 하나의 조형물이자 건축물이었다.

인상적이었던 건 야트막한 언덕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나무집 모양의 풍미술관이었다. 바람이 통하도록 빗살 형태의 목재로 벽을 처리해 느낌이 독특했다. 눈보다 귀가 더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내부의 나무가 검게 칠해져 있어, 눈이 어둠에 적응하는 동안 바람의 움직임과 소리에 자연히 집중할 수 있었다. 이타미 준의 공간에선 바람도 인테리어가 되고, 건축물이 되었다.

●이용정보=관광객이 비오토피아(pinxbio topia.co.kr)로 입장할 수 있는 방법은 커뮤니티센터 레스토랑을 이용하는 것뿐이다. 성게 크림파스타(3만원), 흑돼지 목살 스테이크(3만원) 등이 추천 메뉴다. 약 130만㎡(4만 평) 규모의 생태공원 안으로 미술관 네 곳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어, 식사 뒤 산책 코스로도 좋다. 레스토랑은 정오부터 오후 10시까지 문을 열지만, 보안 문제로 해가 진 이후에는 미술관 관람이 어렵다. 064-793-6030.

1 빛이 잘 들도록 설계된 본태박물관 제2박물관. 2 설치미술가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제3박물관

자연과 호흡하는 박물관 본태박물관

안도 다다오는 한국이 사랑하는 건축가이자, 한국을 사랑하는 건축가이다. 이태 전 제주 중산간지역에 개관한 본태박물관은 섭지코지의 휘닉스 아일랜드 내 글라스하우스, 지니어스 로사이에 이은 그의 세 번째 제주도 작품이다. 본태박물관은 고(故) 정몽우 현대알루미늄 회장의 부인 이행자(70) 여사가 설립한 박물관이다. 고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등 수억원을 호가하는 고가 예술품과 함께 안도 다다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안도는 “인간과 자연, 공간의 합일점을 찾는 것이 건축”이라고 강조하는 건축가다. 안도의 여느 작품처럼 본태박물관에도 안도의 건축 철학이 그대로 배어 있다. 제주 중산간지역의 지형을 최대한 살리면서 박물관 건물이 들어섰다.

경사지 앞뒤에 높인 제1박물관과 제2박물관이 같은 2층 건물인데도 높이가 달랐다. 굴곡진 경사면을 깎지 않고 건물을 올렸기 때문이다. 조금 더 높은 자리에 있는 제2박물관은 멀리 산방산과 마라도를 바라보도록 남향에 통창을 냈고, 대지가 낮아 멀리 내다볼 수 없는 제1박물관에는 박물관 앞에 인공호수를 두어 균형을 맞췄다. 안도가 제주 중산간지역을 빛이 잘 들고 바다 전망이 좋은 공간으로 해석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노출 콘크리트와 빛 등 안도 다다오의 특징이 모두 나타나고, 제주의 자연과도 조화를 이룬 곳이죠.” 김선희 관장(41)의 해석도 비슷했다.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된 건물이 차가운 느낌을 주는 반면, 곳곳에 자연광이 드리우는 실내에는 온기가 배어있었다. 전시장에 창을 낸 것도 특이해 보였다. 박물관 전시장은 전시품의 보존·관리를 이유로 창을 두지 않는 게 보통이다. 전시장 안쪽 햇빛이 드는 자리에 토기·자기 등을 두었는데, 해의 위치와 세기에 따라 토기와 자기의 빛깔과 그림자가 시시각각 달라졌다.

●이용정보=본태박물관(bontemuseum.com)은 전통 민예품이 놓인 제1박물관, 현대미술 작품이 전시된 제2박물관과 별채 제3박물관으로 나뉘어져 있다. 현대 미술품을 비롯해 이행자 여사가 30년 넘게 수집한 전통 민예품 수백 점이 전시돼 있다. 제3박물관에서는 오는 12월15일까지 ‘쿠사마 야요이전’이 이어진다. 어른 1만8000원, 어린이 1만원. 오전 10시~오후 6시. 064-792-8108.

1 사방이 유리로 둘러싸인 방주교회. 방주교회 물 위와 유리 벽으로는 제주의 풍경이 스며든다.
2 예배당 안에서도 밖을 훤히 내다볼 수 있다.

관광 명소가 된 교회 방주교회

산방산이 훤히 내다보이는 언덕 위에 방주교회가 있다. 교회를 둘러싼 연못물과 유리로 된 교회 벽에 제주의 풍경이 비치는 아름다운 곳이다. 네모반듯한 인공 연못 위로 건물이 떠있는 듯한 모습이 영락없이 성경 속 ‘노아의 방주’를 닮았다. 2009년 문을 열었는데, 설계 시점으로 이타미 준의 마지막 유작이다.

설계 당시의 이름은 ‘하늘의 교회’였다. 활처럼 휜 경사 지붕은, 수면으로 튀어오른 물고기가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모자이크 형태의 지붕과 빗살의 유리벽 역시 물고기의 비늘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방주교회는 목사 1명이 지키고 있는 작은 교회다. 예배당 정원도 120명에 불과하다. 그 흔한 지붕 위 십자가 탑도 없다. 그러나 이 작은 교회는 방문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관광지도 아닌데, 하루 800명 이상이 찾아온 적도 있었단다.

교회는 노출이 무척 부담스러운 눈치였다. 방문객이 늘면서 교인의 불편이 커진 탓이다. 화단이 망가진 경우는 부지기수였고, 예배 시간에 자리를 옮기며 사진을 찍는 사람들 때문에 예배가 중단된 적도 있었다. 몰래 촬영한 사진으로 엽서를 만들어 판매한 사람도 있었단다. 모두 교회가 예뻐서 빚어진 일이다. Week&도 한 차례 거절 당한 뒤, 거듭 양해를 구해 겨우 예배당 안을 촬영할 수 있었다.

예배당은 막힌 공간이자 열린 공간이었다. 사방이 유리로 돼 있어, 교회를 둘러싼 풍경이 햇빛과 함께 쏟아져 들어왔다. 예배당은 신과 인간만이 아니라 제주의 풍경까지 어우러지는 공간이었다. 신자가 아니지만 마음이 한없이 평온해지는 기분이었다. “교회 밖 풍경을 보느라 설교에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겠다”는 농담 섞인 질문에 임장원(48) 담임목사가 담담히 답했다.

“요즘은 예배 때 먼저 나서서 야외 풍경을 감상해보시라고 권해요. 목사의 설교가 아무리 좋아도 자연보다 위대할 수 있나요.”

●이용정보=방주교회(bangjuchurch.org)는 비오토피아 입구에서 약 300m 거리에 있다. 교회 안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기독교 신자가 아니어도 자유롭게 입장할 수 있다. 대신 내부 사진 촬영은 금지돼 있다. 오전 10시~오후 5시(예배 1부 9시30분, 2부 4시 30분). 교회 맞은 편에 교회 재단에서 운영하는 카페 ‘올리브’가 있다. 한라봉·영귤 등으로 만든 에이드가 인기다. 5000원. 064-794-0611.

예술작품 안에서의 하룻밤 포도호텔

1 오름과 제주 전통가옥의 지붕을 모티브로 한 포도호텔의 모습.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포도송이 모양이 된다. 2 너른 풍경이 훤히 보이는 호텔 안 레스토랑. 3 포도호텔 한실 내부.

포도호텔은 중산간지역에 조용히 숨어있었다. 주위로 크고 작은 오름이 적지 않은 데다, 객실 26개가 전부인 단층 건물이어서 호텔 입구에 접근하기 전에는 전체 모습이 잘 드러나지도 않았다.

제주의 전통 초가와 오름을 본 땄다는 건물의 외관은 그저 단정했다. 별장형 객실은 다닥다닥 붙어 있지 않았다. 어떠한 규칙도 없었다. 불규칙적으로 띄엄띄엄 놓여 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듯했다. 지붕이 오름 모양이어서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영락없이 포도 송이 모양이 된다. 포도호텔이라는 이름이 여기에서 나왔다고 했다.

“조형적으로 아름답고 튀는 건물이 아니라 지역 풍경과 어울릴 수 있는 건물을 짓고자 하셨어요. 주변 환경과 동떨어진 채로 홀로 뛰어난 건물은 있을 수 없다고 하셨죠.” 이타미 준의 딸 유이화(41) ITM건축연구소 대표는 “주변 환경과 어울리도록 겸손한 자세로 지은 집”이라고 포도호텔을 요약했다.

그러나 포도호텔을 구경하는 비용은 겸손과는 거리가 먼 편이다. 호텔 내부로 들어가려면 숙박을 해야하는데 가격이 만만치 않다. 가장 저렴한 디럭스룸은 44만원, 스위트룸은 하룻밤 방값이 220만원에 달한다. 그럼에도, 포도호텔에서 묵겠다는 사람이 줄을 선다. 휴가 시즌에는 두 달 전에 예약해야 한다고 했다. 단순히 잠을 자는 게 아니라 예술작품 안에서 머무는 경험을 할 수 있어서다.

포도호텔은 단층 건물인데도 전망이 빼어났다. 남향의 양실 객실에서는 산방산·형제섬 등 제주 남쪽 바다의 절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한라산 방향의 한실 객실은 생태연못과 울창한 숲이 창밖의 풍경이었다. 전망은 양실에 못 미쳐도 한실은 한지로 마감된 온돌 바닥, 황토 벽, 히노끼 욕조 등으로 꾸민 인테리어가 단아했다. 침대에 누웠다. 서까래가 훤히 드러난 천장을 올려보다 이내 단잠에 빠졌다.

●이용정보=포도호텔(thepinx.co.kr/podo hotel)은 별장형 호텔이다. 모두 26실을 갖췄는데 바다 전망의 양실(13실)은 젊은 층에게, 히노끼 욕조를 갖춘 한실(13실)은 어르신에게 인기가 좋다. 모든 객실에서 온천수를 이용할 수 있다. 1박 44만원부터. 일본식 왕새우 튀김우동(1만9000원)을 맛보기 위해 일부러 레스토랑을 들르는 사람도 많다. 064-793-7000.

글=백종현 기자 jam1979@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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