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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영국함대는 시시각각 포클랜드에 다가오고있다. 이미 잠수함대는 포클랜드해역에 접근했다. 숨가쁜 「헤이그」미국무장관의 중재외교는 홍콩식과 안도라식 해결방안을 제시하고있다.
홍콩식은 영유권은 아르헨티나가 갖되 영국이 장기간 조차하는 방안, 안도라식은 아르헨티나와 영국이 공동주권을 행사하는 방안이다. 피레네산맥의 소공국 안도라가 프랑스와 스페인의 공동통치를 받는것을 본뜬것이다.
식민지를 뜻하는 Colony (영)는 라틴어의 Colonia에서 유래한다. 또 이말은 Colonus (농부), Colo(경작)에서 나왔다. 적어도 이 말은 로마가 지중해연안에 둔전병을 두고 땅을 경작할 때는 올바른 정의였다.
그러나 「지리상의 발견」이후에 자행된 열강의 식민지개척은 원주민이나 타국가에 대한 침략과 종속화의 역사였다.
식민지개척의 선두주자는 스페인, 포르투갈, 네델란드 3개국이다. 주로 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에 상업상의 거점을 구축했다. 이 뒤를 이은 것이 영국, 프랑스, 독일. 산업혁명을 겪어 무한의 원료와 소비시장을 필요로했다.
최후로 등장한 것이 미국과 일본. 19세기 후반은 이들 열강들이 전쟁과 흥정으로 세계지도를 마음대로 뜯어고치던 「제국주의의 세계분할」시기였다. 6대주5대양에 유니언잭이 휘날리지 않는 곳이 없었던 대영제국의 신화가 탄생한 것도 이때였다.
영국의 인도지배는 독특한 방식으로 이룩됐다. 「해적상인」들이 차린 동인도회사가 인도무역을 독점하고 드디어 나라마저 병합한것이다. 『영국의회는 동인도회사를 지배하나 동인도회사는 인도를 지배한다』는 말도 나왔다.
「H·G·웰즈」는 그의 「세계문화사대계」에서 『위험적인 가난한 젊은이들이 인도에 나가 매우 부유하고 화를 잘내는 노신사가 되어 돌아온다』라고 썼다. 무자비한 약탈을 규제하려는 양식의 움직임에 「화를 잘내는」 식민주의자들을 비꼰 말이다.
식민지의 독립은 2차대전을 전후해서 파상적인 물결을 타고왔다. 제1파가 아시아지역, 제2파가 아랍·아프리카와 중근동지역, 제3파가 검은 아프리카와 카리브해지역, 제4파가 오세아니아 도서지역이다. 1백여개 국가가 2차대전이후 탄생했다.
80연대에 들어와서만도 아프리카의 짐바브웨, 남태평양의 바누아투, 중미의 벨리즈등이 각각 영·불로부터 독립했다.
그러나 40여개 도서나 도시가 아직도 식민지로 남아있다. 지금 최대의 식민지 보유국(?) 은 덴마크. 자국영토의 50배에가까운 그린란드가 덴마크땅이다.
이미 영·불은 식민지경영능력을 잃어버린지 오래다. 영국은 명목뿐인 영련방회의로, 프랑스는 불어권 정상회담으로 신생독립국과 경제·문화상의 관계만 지속할 뿐이다. 프랑스로 몰려드는 알제리인들은 오히려 프랑스 노동력의 기반을 잠식하는 골칫덩이일뿐이다.
이제 식민주의는 서서히 막을 내리는 중이나 죽은줄 알았던 불씨는 이곳저곳서 터져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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