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살아난 윤 국방, 개혁 무리수 안 둘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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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윤광웅 국방부 장관에 대한 해임 건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됐다. 민노당의 협조가 있었지만,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의석 수 우위에 따른 '힘의 정치'의 결과다. 당초 여당 내에서도 윤 장관 해임은 대세였다. 그만큼 그의 사퇴는 민심이었다. 따라서 이번 여권의 처신은 국민 여론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대통령의 고집과 대통령의 의중이라면 무조건 따르는 구시대 권위주의 정권의 행태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입만 열면 '탈권위 정치' '여론정치'를 외쳐 온 이 정권의 정체성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묻고 싶다.

윤 장관의 해임안은 부결됐지만 그 후유증은 간단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감시소초(GP) 참극의 책임이 일선 부대 지휘계통에만 돌아가게 됐다는 점이다. 최종 지휘책임과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할 장관은 유임되고, 부하 지휘관들이 문책받게 된 것이다. 물론 관련 지휘관들도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그 정도로 마무리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국민의 충격과 분노가 정치적 책임을 요구한 것이다. 우리가 윤 장관의 사퇴가 필요하다고 요구한 것도 이런 측면에서였다. 그럼에도 노 대통령은 군 개혁을 명분으로 이를 거부했다. 이제는 여론이고 민심이고 관계없이 대통령 마음 내키는 대로 해 보겠다는 선언이라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윤 장관은 "책임을 통감하고 심기일전해 병영문화 개선과 국방개혁에 차질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해임안이 부결된 이상 윤 장관의 이런 언급이 제대로 실현되길 바란다. 그러나 우려가 더 크다. 윤 장관은 이미 '큰 상처'를 입었다. 대통령의 '총애'만으로 군을 이끌고 가려면 무리수가 따를 것이다. 진정한 리더십은 권력자의 총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정통성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윤 장관이 대통령과의 '코드 맞추기'에만 신경 쓰게 될 게 뻔하다. 그렇다면 그가 추진하는 어느 현안도 나라의 국방을 위한 게 아니라 정권을 위한 것일 수밖에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