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백화점 간부 부인들 '2일 사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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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일산 그랜드백화점의 식품매장에 '낯선' 판매원이 등장했다. '더욱 친절히 모시겠습니다'란 문구가 적힌 어깨띠를 두른 박지연(42.사진(右))씨의 손놀림이 느리자 바로 매장 책임자의 지적이 뒤따랐다. 박씨는 연신 "죄송해요. 앞으론 잘할게요"라고 말했다. 어깨띠를 여러번 고쳐매는 등 긴장한 표정이다.

박씨는 이 백화점 여성의류팀 팀장을 맡고 있는 백운학(43) 차장의 부인이다. 그랜드백화점은 지난 24~25일 점장을 비롯해 여성.남성.가정용품.식품팀장 등 7명의 간부사원 부인들이 판매사원으로 일하는 행사를 했다. 비록 이틀간 근무하는 것이지만 직원들의 사기를 높여주고 고객들에 대한 서비스에 정성을 다해보자는 취지에서 기획된 것이다. 간부사원 부인들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의류와 생식품 매장에서 상품을 포장하거나 안내 도우미로 활동했다. 외국계 기업에서 일을 했던 박씨는 백화점에서의 서비스 업무가 쉽지 않다는 것을 체험했다고 한다. 특히 점심과 휴식시간을 제외하곤 늘 서있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또 손님에게 공손히 인사를 하고 다양한 요구를 들어 주는 것도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박씨는 "종업원이 공손히 인사를 해도 이를 무시하고 지나치는 손님은 백화점 직원의 정성을 몰라 주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틀간 판매사원 일을 마친 뒤 7명의 주부들은 남편의 직장생활을 더 잘 이해하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박씨는 "툭하면 밤 12시에 들어오는 남편을 그동안 머리로만 이해했다"며 "이젠 피곤한 남편의 다리라도 주물러줘야 겠다"고 말했다.

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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