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 타임] 창측 놔두고 통로 좌석 차지, 얌체님 버스 세냈습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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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두 사람씩 앉게 돼 있는 버스를 탈 때마다 느끼는 불편이 있다. 먼저 탄 사람들이 한결같이 통로 쪽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자기 옆자리에는 앉지 말아 달라는 무언의 의사표시를 하는 것 같다. 할 수 없이 어느 한 줄의 안쪽 자리로 비집고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때 먼저 앉아 있는 승객이 대개 눈을 감고 있어 안쪽 자리로 들어가려면 늘 머뭇거리게 된다. 내가 앉기 위해선 자는 사람을 깨워야 하므로 마음이 영 편치 않다. 물론 간혹 창가 자리에 앉는 사람도 있긴 하다. 그렇지만 이 경우에도 짐이나 가방을 통로 쪽 자리에 놓아두곤 한다. 출근 길 잠시라도 방해 받지 않고 눈을 붙이고 싶은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좁아터진 마음 씀씀이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할 뿐이다.

남을 배려하지 않는 사례는 주변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옆 사람 의식하지 않고 시끄럽게 떠들고, 큰 소리로 휴대전화 통화를 하는가 하면, 아이들이 아무렇게나 뛰어 다닌데도 부모는 그대로 둔다.

그런 모습을 보면 짜증스럽다가도 어려웠던 시절 주변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이 살아 온 앞 세대의 유산인가 싶어 스스로 부끄러워진다. 한 차원 높은 삶을 목표로 하는 시대라는데 우리의 자화상이 이래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안타까움이 이젠 절박함으로까지 번진다.

사실 좁은 땅에서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야 하는 운명은 모두가 똑같다. 그런 상황에서 나만을 생각한다면 금방 주변이 괴로워진다. 특히 공적인 장소에서 혼자만의 독립된 공간을 독점할 수는 없다. 서로가 편하게 사는 길이 무엇인지 한번쯤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남을 위하는 일이 곧 나를 위한 일이 된다. 내가 다음 사람을 위해 안쪽 자리를 잡으면, 내일은 그가 또 남을 위해 바깥쪽 자리를 비워두겠지. 이런 마음의 끈이 어느 사람을 만나서는 끊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하나씩 늘어난다면 언젠가는 내가 뿌린 씨앗을 거둘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고 싶다.

권순자(주부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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