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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직 공무원을 '선생님'으로 부르라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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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6월 중순 어느 날 일선 학교 현장에 황당한 공문 하나가 내려왔다. 기능직 공무원(인쇄, 학교 내외부 관리 등 잡무를 처리하는 공무원) 호칭을 '선생님'으로 불릴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해 달라는 공문이다. 기능직 공무원이 대통령 비서실에 민원을 제출하고 교육인적자원부에서 이에 대해 지방교육청에 개선을 요청해 생겨난 공문인 것이다.

그 공문을 접한 학교 선생님은 모두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황당해한다. 어떤 선생님은 '이제 진짜 선생님은 뭐라 불러야 하나? 교장 선생님은 각하라고 불려야 하겠지?'라며 혀를 찬다. 또 어떤 이는 이제 기사가 학생들 가르치는 날이 왔구나 하며 머리를 흔든다.

청와대 비서실이라는 곳에 근무하는 사람과 교육부에서 이 공문을 생산하고 결재하며 지시한 사람은 누구인지, 어떤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는지 참 궁금한 하루였다.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호칭을 마구 바꾸어도 돈이 들지 않으니 상관없다는 것인가? 민원을 넣으니 들어주지 않으면 또 무슨 골치 아픈 일이 생길지 몰라 에라 귀찮다 들어주자 하는 것일까? 아니면 호칭이 무슨 대수냐 하는 단순한(단세포적이고 순진한) 생각으로 생산한 공문일까? 또 아니면 이 공문을 받아든 일선 학교 선생님과 학부모들이 얼마나 큰 혼돈에 빠질 수 있는지 시험 삼아 한 일일까? 알 수 없었다.

호칭에는 그 호칭에 해당하는 사람의 직업과 지위, 그리고 사회적 인식 등이 총체적으로 녹아 있으며 사회적 약속이 들어 있다. 선생님은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이고, 기술을 업으로 하는 사람은 기술자인 것이다.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은 사장인 것이고, 그 밑에서 일하는 사람은 종업원인 것이다.

얼마 전 5월 중순에도 아가씨를 아가씨라 불렀다 해서 인터넷 뉴스에 오른 적이 있다. 모두 황당해했다. 일흔 된 할머니가 병원에서도 식당에서도 '언니, 나 뭐 좀 줘요'하는 세태다. 상대를 존중해 나도 존중받고 싶은 생각이 깃든 말이 분명하다. 그러나 호칭이란 그 상대를 비하하지 않으면서도 위치와 하는 일에 걸맞아야 혼돈이 없고 오해가 생겨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제 '기사님'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면 진짜 선생님은 '기사님'이라고 불러야 한단 말인가? 아니면 선생님들도 청와대에 민원을 넣어 다른 거창한(예를 들어 장관님) 호칭으로 불러 달라고 해야 한단 말인가? 세상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대통령 비서실에 묻고 싶다.

양정모 초등학교 교사.경기도 고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