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문법도 없는 국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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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 나라는 건국 35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통일된 국어문법이 없다.
통일된 국어문법은 고사하고, 그 기초가 될 통일된 학교문법조차 없었다.
문교부는 84년도 교과서 편찬이라는 시한을 두고 국어문법이론을 통일하여 단일 교과서에 의한 통일문법 교육을 결의하고 나섰다.
문교부는 3월중에 각종 학설을 대표하는 국어학자들을 모아 「통일문법연구위원회」를 구성하여 여기서 토론을 거쳐 통일안을 확정하려는 구체적 계획까지 발표하고있다.
그러나 문제의 중대성에 비추어 우리는 문교부의 그 계획추진에 필요한 몇 가지 원칙에 미리 주의를 환기하고자 한다.
우선 국어문법통일의 실현이 시급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섣불리 쉽게 해결하려고 무리하지는 말도록 당부하고 싶다. 학문상의 이론은 원칙상 각기 그것을 주장하는 학자의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 다양한 이론을 토의와 절충을 통해 통일한다는 것이 어려운 일일뿐 아니라 1년이라는 시한을 미리 정한다는 것 역시 무리다.
그런만큼 지금 단계에서는「국어문법」의 통일을 강행하기보다는 「학교문법」통일이란 목적으로 그 단계를 낮추어 추진할 것을 부탁하는 것이다. 학교문법의 통일에도 물론 적잖은 어려움이 있음을 간과해선 안된다.
과거 문교부의 학교문법 통일을 위한 노력들이 갖가지 잡음과 학계의 불만을 불러 일으켰던 점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통일」의 요구가 너무 절박했기 때문에 졸속한 결정으로 야기됐던 잡음이었다.
과거 문교부가 두 번에 걸쳐 단행했던 결정들의 과오를 이번에는 되풀이해선 안되겠다.
63년에 문교부가「학교문법통일전문위원회」를 구성했을 때는 위원구성에 문제가 있었다.
위원은 마땅히 문법전문가여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중엔 문교부의 사무담당관리도 포함되었을 뿐 아니타 그가 투표권을 행사함으로써 단 한 표의 차이로「학교문법통일안」같은 중대문제가 판가름 났었다.
그땐 이희승문법체계에서 10품사중 9품사와 최현배문법체계에서 9품사를 각각 인정하면서 용어는 이씨의주장인 한자어를 채택했었다.
그러나 65년에 문교부는 이를 스스로 폐기하고 종래 9품사외에 새로 「잡음씨」를 넣어 10품사도 병용토록 하고 아울러 한자어와 고유말 용어를 함께 쓰도록 했다. 그러니까 학교문법은 9품사와 10품사체계가 동시에 사용되고 또 품사의 명칭도 한자어도 되고 한글용어도 되는 뒤축박죽이었다.
그와 같은 문교당국의 무정견으로 지난 20여년 간의 학교문법체계는 난맥을 이루어왔다.
이런 혼란속에서 학생들은 「명사」도 알아야 했지만 또 「이름씨」도 기억해야 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엄청난 정력의 낭비였을 뿐 아니라 어린 학생들 사이에 국어에 대한 창인과 자랑을 의심케 하는 부작용도 낳았다.
통일된 학교문법체계가 확립되지 못했다는 것은 곧 근본적으로는 나라의 국어국자정책이 확립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실로 문자를 가지고 있는 문화민족으로서는 수치요 불명예라 할 것이다. 독립된 나라의 정부를 가지고 있는 우리가 얼마나 국어국자문제를 소홀히 다루었던가의 반증도 된다.
그런 뜻에서 이제 정부가 늦기는 했으나 국어문법통일에 적극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이 시점에서 다시 당부하고자 하는 것은 국어문법통일엔 졸속이나 독선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며 그 통일의 논의과정은 어디까지나 공정하며 원칙에 충실해야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학문적 원리에 입각해서 결정되어야 할뿐더러, 우리말의 특수성만 고집하지 않는 문법용어로서 이루어져야겠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이번 구성되는 「통일문법연구위원회」는 구성이 공정해야 하고 또 장기적으로 연구와 토론을 병행하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어야한다.
그럼으로써 학교문법통일의 성공을 계기로 앞으로 여타 국어국자문제의 해결에도 정부가 의욕적으로 나서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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