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우 박사의 건강 비타민] 곱창에 소주 뒤 오징어와 맥주 … 통풍 부르는 최악의 메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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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가끔 언론의 전화를 받는다. 이달 초부터 중순까지 다소 생소한 질문을 엄청나게 받았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부자연스러운 걸음걸이의 원인을 알려달라는 요청이었다. 40여 일 만에 김정은이 지팡이를 짚은 모습으로 북한 TV에 등장하면서 다리나 발목 수술을 받았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잠정 결론이 났다.

 한때는 통풍(痛風)이 유력한 원인으로 지목됐다. 걸음걸이만 보고 정확하게 판단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통풍이 원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통풍은 급성기에 통증이 심하다가 약물 치료를 하면 일주일에서 열흘 사이에 호전된다. 김정은이 통풍 치료를 위해 40일이나 나타나지 않았을 가능성은 낮다.

 통풍은 한 번에 치료되는 것이 아니고 꾸준히 관리해야 하는 질병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통풍 환자는 2009년 20만1131명에서 지난해 29만2113명으로 늘었다. 연평균 11.3% 증가한다. 통풍은 혈중 요산(尿酸) 농도가 높은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서 요산 결정체가 엄지발가락·발목 등에 침범해 염증과 극심한 통증 등을 일으키는 질환이다. 통풍의 증가 추세는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다. 이유가 있다.

 첫째, 인구 고령화다. 통풍은 나이가 들수록 발병 위험이 증가한다. 인구 10만 명당 통풍 환자는 70대 이상이 1273명으로 가장 많고 60대 1232명, 50대 989명, 40대 743명 등이다.

 식생활 서구화와 과음·과식도 통풍의 원인이다. 옛날에는 통풍이 잘 먹는 사람들이 주로 걸린다고 해서 ‘부자 병’으로 불렸다. 통풍을 일으키는 요산은 ‘푸린’이라는 아미노산의 대사 산물이다. 푸린이 풍부한 식품은 육류, 육류의 내장 등 푸른 생선, 멸치, 마른 오징어, 베이컨 등이다. 또 식물이나 벌꿀에 함유된 당분인 과당도 요산을 높인다.

 과음도 위험 요소다. 특히 맥주는 피해야 한다. 술은 몸 안에서 요산을 많이 만들 뿐 아니라 요산이 소변으로 배출되는 것을 방해한다. 저녁으로 소주와 곱창을 먹고 2차로 호프집에서 마른 오징어에 맥주를 마신다면 혈중 요산 수치가 뚜렷이 높아진다. 요산 수치가 높은 사람이 고혈압·당뇨병·고지혈증 등의 대사증후군이 있다면 통풍 발병 위험이 더 증가한다.

 요산 수치가 정상이어도 통풍을 진단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세브란스병원 류머티스내과 박용범 교수팀이 병원을 찾은 통풍 환자 226명을 조사한 결과 그중 12%인 27명의 요산 수치가 정상이었다. 요산 수치가 정상이라도 통풍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수치만 보고 안심하지 말고 전문의의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

 통풍은 전신 대사질환이며 동맥경화증이나 심혈관질환의 위험을 증가시킨다는 연구 결과들이 나와 있다. 통풍의 대표 증상이 있다고 해도 섣불리 자가 진단할 수 있는 질환은 아니다. “발가락에 관절염이 생긴 것 같다”고 말하는 환자 중 통풍 진단을 받는 경우도 꽤 있다. 혈중 요산 수치를 내리는 약물치료가 기본이다. 푸린이 많이 든 음식과 술을 피해야 한다. 통풍으로 인한 급성 통증은 1~2주일쯤 지나면 호전되기도 한다. 통증이 줄었다며 방심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으면 몸속 곳곳에서 큰 병을 키울 수 있다.

이진우 세브란스병원 정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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