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경원 칼럼

'접촉을 통한 변화' 전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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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일관성도 없고 비효율적이다."

지난 14일 미국 상원 외교분과위원회 청문회에서 미국의 여야 국회의원들이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한 내용이다. 특히 부시 행정부는 북한의 핵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최우선적인 목표인지, 아니면 북한의 '체제 변화'를 유인하는 것이 최우선적인 목표인지 분명하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물론 문제의 성격상 미국이 어떤 목표를 최우선적으로 추구하는지 항상 공개적으로 밝힐 수만은 없다. 그러나 정책의 결과만을 놓고 본다고 해도 부시의 대북정책이 성공적이라고 말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결국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 프로그램을 포기하도록 유혹하지도 못하고 위협하지도 못한 어정쩡한 상태에 놓여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결단력 있다는 부시 대통령이 아직도 대북정책의 기본 방향도 설정하지 못하고 행정부 내에서조차 강경파와 온건파의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강경파는 처음부터 김정일 체제를 악의 세력으로 보고 그런 정권과 마주 앉아 협상을 하고 합의에 도달한다는 것은 무의미할 뿐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하다고 믿었다. 이미 북한은 1994년 제네바 합의를 지키지 않았고 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을 비밀리에 추진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과의 협상이나 합의는 실제로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 김정일 체제는 본질적으로 변화하지 않는 한 상대할 수 없는 존재라고 본 것이다.

온건파도 김정일 정권을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정권으로 보지만 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악의 정권도 상대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부시 대통령의 문제는 강경 대 온건의 문제를 부시 대통령 자신의 마음속에서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데 있다. 그러니까 부시 대통령 자신이 김정일 정권을 악의 현상으로 인식하고 북한 체제를 상대로 협상하기를 주저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 동시에 부시 대통령은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북한 정권과 마주 앉아 협상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이처럼 대통령 자신이 대북 접근의 모순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한 미국의 대북정책은 방황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바로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대북정책의 전략적 목표를 '접촉을 통한 변화'라는 개념으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 물론 '접촉을 통한 변화'라는 개념은 서독의 동방정책이 추구했던 목표인데 우리도 북한의 변화를 원한다면 접촉을 확대해 나가는 길밖에 없다.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된 작은 나라가 자체적으로 체제의 구조적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은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북한도 완전히 고립된 상태에서 수십 년 동안 살아 왔기 때문에 의미 있는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밖의 세상과 소통하는 길을 열어 놓아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대북전략의 기본 목표를 북한 사회의 창문이라도 여는 방향으로 설정하는 것이 도움이 되리라고 믿는다.

그런데 이에 대한 반응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걸리더라도 북한에 변화를 유인할 수 있는 방법은 접촉을 확대해 나가는 길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독일 통일에서 보는 것처럼 역사의 신은 지금 이 순간에도 통일을 선물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 인간에게 그런 능력은 주어지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날 신의 개입으로 북한에도 변화의 순간이 돌연히 나타날 수 있는 가능성은 배제하지 않으면서, 우리는 꾸준히 북한이 창문이라도 차례로 하나씩 열도록 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북한을 설득하는 길밖에 없다.

최근 6.15를 기념하는 행사도 북한 사람들이 밖의 세상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는 제한된 기회나마 만들어 주었다는 뜻에서 바람직한 행사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앞으로도 우리는 모든 대북 접근의 목표를 '접촉을 통한 변화'에 두고 꾸준히 노력해 나간다면 미래의 어느 날 갑자기 통일의 순간이 우리에게 다가올 것으로 믿는다.

김경원 고려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