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일본 + 1' 안보리 개편안] 속내와 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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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새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일본을 포함한 두 나라 정도만 받아들일 수 있다는 미국의 입장 표명은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우선 일본에 대한 미국의 높은 신뢰를 다시 확인했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으로 유엔에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없었지만 경제원조를 앞세워 국제무대에서 위상을 키웠다. 현재 유엔 분담금의 19%(22%인 미국에 이어 2위)를 내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그러나 미국이 일본을 지지해도 그것이 일본의 안보리 진출을 돕는 길인지는 미지수다. 안보리 진출을 위해 공동 보조를 취해온 G4(일본.독일.인도.브라질)의 입장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이 일본의 안보리 진출을 진정 바란다면 G4가 낸 결의안(상임 6개국, 비상임 4개국 각각 증설)을 그냥 지지하면 된다. G4는 지난달 중순 제출한 개편안을 가능하면 이달 말이나 늦어도 다음달 초에는 유엔총회 표결에 부친다는 일정 아래 표를 모으고 있다. 미국의 제안은 G4의 공조를 흔드는 것이다.

반대로 미국에 대한 반감이 G4의 결속을 더 강하게 만들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최영진 주 유엔 대사는 "미국의 제안이 향후 안보리 개편작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고 말했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안보리 이사국을 10개나 늘리는 G4의 구상에 대해서는 반대하고 있다. 미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안보리를 끌고나가기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미국은 다음주 초 안보리 이사국이 될 '자격'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할 방침이다.

미국이 가장 중시하는 것은 지역적 대표성이 아니라 유엔에서의 경제적.군사적 기여도다. 민주주의나 인권에 문제가 있는 나라가 안보리에 들어와서도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향후 안보리 개편 전망=일본 등 G4는 연내에 안보리 개편 문제를 매듭짓는다는 목표지만 그럴 가능성은 더 작아졌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16일 "미국이 자신의 제안을 다른 회원국들과 협의해야지 일방적으로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고 한마디 했다. 그는 지난 3월 초 두 개의 안보리 개편안을 제시했는데, 미국이 뒤늦게 새로운 안을 내놓아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며 못마땅해 하고 있다.

미국의 개입으로 G4의 의도가 어긋날 경우 일본은 미국의 안에 따라 새롭게 작업을 시작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하나의 상임이사국 자리를 놓고 논란이 분분할 것이 틀림없다. 미국의 제안은 새로운 논쟁만 낳고 아무런 결론에 이르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뉴욕=심상복 특파원

일본의 입장은

"언뜻 고마운 것 같기도 하고 곤란하기도 한 변화구를 던졌다". 마치무라 노부타카(村町信孝) 일본 외상이 17일 미국의 안보리 개혁안에 대해 한 말이다.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지한다고 명시했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결코 환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의 입장은 분명하다. 총리와 외상은 미국의 안에 찬성할 수 없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G4 국가들과 함께 마련한 기존의 개혁안을 그대로 밀고 나가겠다는 것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미국안에 일본이 올라 탈 순 없다"며 "G4와의 협력을 중시하고 결속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마치무라 외상 역시 16일 밤 곤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과의 통화에서 "G4의 틀을 깨는 것은 당장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일본을 지원해 주겠다는 미국의 제안을 거부하는 이유는 실현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마치무라 외상은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제안으로 (유엔 회원국) 3분의 2 이상의 합의를 얻을 수 있겠느냐"며 "아프리카 50여개국이 찬성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프리카에 2석을 배정하는 G4의 제안대로라야 최대 표밭인 아프리카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마치무라 외상은 또 "(G4안과 미국안 사이에서의) 양자택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보다 더 깊이 논의해 가다 보면 뭔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도쿄=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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