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 화단에 새 빛 「'81 문제작가 작품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화랑가의 겨울 잠」을 전혀 아랑곳없이 81년을 정리하는 대 전시회가 열려 미술 애호가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서울미술관(관장 김윤수)에서 열리고 있는 「81년 문제작가·작품전」이 바로 그것이다(12일까지).
70년대부터 심화되기 시작한 화단의 빗나간 상업주의, 태만한 비평, 관련 기관들의 무성의 등이 한데 얽혀 혼돈을 거듭하고 있는 화단을 발전적으로 정비해 나가자는 뜻에서 기획된 이 전시회는 평론가로 하여금 지난 1년간의 작업 실적을 토대로 뛰어난 작가와 작품을 선정케 함으로써 「평가전」의 양식을 취하고 있다.
전시장 문을 막 열고 들어서면 전면에 걸린 『질친』(서양화가 김경인 작)가 눈길을 끈다.
일그러진 형태의 인간들이 서로 손가락질하며 비난하는 모습을 담은 이 그림은 사회현실을 객관적·비판적으로 그려냄으로써 삶의 진실을 표출하려는 리얼리즘 양식을 취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자연을 대상으로 한 임옥상씨(서양화)의 그림이 원쪽방에 걸려있고 그 가운데로 심정수씨의 조각 작품이 2개의 방에 걸쳐 놓여있다.
입이 찢긴 여인의 형상을 취하고 있는 작품 『토르소』라든가 『가슴이 뚫린 남자』 등은 외양적인 파손을 통하여 한없는 비통과 비애의 느낌을 던져준다.
격렬하고 긴장된 화면돌파는 대조적으로 이지적인 선의 흐름, 면의 분할를 통해 차갑게 정돈된 느낌을 주는 그림들이 있다. 바로 이청운씨(서양화)의 『구석』작품들이라든가 김태호씨(서양화)의 『형상』시리즈가 그것이다.
오른쪽 벽면은 출품작가 중 단 두사람인 여류들의 작품이 나란히 걸려있어 이채롭다.
다양한 색조를 하나하나 투명하게 살려낸 최욱경씨(서양화) 의 작품, 섬유를 염색하여 입체적으로 작품화한 정경연씨의 『무제』시리즈 등은 참신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전시장을 찾는 발걸음은 뜸한 편이나 저마다의 개성이 불 뿜는 작품으로 인해 방안 가득히 열기가 넘쳐흐르는 모처럼의 볼만한 전시회라 생각된다.
다만 11명의 출품작가 중 서양화 부문이 8명, 조각 2명, 섬유조형 1명으로 3대 분야의 하나인 동양화 부문이 전멸상태를 보이고 있어 일부 동양화가들이 여러 가지 모색에도 불구하고 아직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홍은희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