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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바꿀 바이러스 vs 대화 걸림돌 … ‘삐라’ 평가 극과 극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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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북한운동연합이 10일 파주에서 살포한 대북전단.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과 함께 1달러짜리 지폐가 들어 있다. [뉴스1]

북한이 망해 가는 이유, 한국의 눈부신 경제 성장, 김정은 왕조의 정체 등이 쓰인 A4용지 크기의 방수 처리 필름 용지. 1달러 지폐와 함께 6만 장씩 수소풍선에 담겨 북녘으로 날아가는 이 대북전단이 2차 고위급 회담을 앞둔 남북 관계에 뜨거운 변수로 등장했다.

지난 10일 경기도 파주와 연천에서 탈북자단체들이 전단 150여만 장이 든 풍선을 날리자 북한은 오후 3시55분 연천 일대에서 풍선을 향해 14.5㎜ 고사총을 발사했다. 우리 군이 ‘진돗개 하나’를 발령하고 대응사격에 나섰다. 그 이후 북한은 “전단 살포를 막지 않으면 2차 고위급 회담은 없다”고 압박하고 있고, 야당도 “현지 주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전단 살포를 법으로 막으라”고 동조하고 있다.

연천·파주 주민들은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는 전단 살포를 몸으로 막겠다”며 실력 행사에 들어갔고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도 “북을 불필요하게 자극하면 우리에게도 손해”라며 살포에 반대했다. 정부는 “제한할 법적 근거가 없다”면서도 탈북자들의 자제를 요청하고 있다.

이념적 위치에 따라 전단 살포에 대한 입장은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보수층에선 “전단은 북한의 변화를 끌어내는 가장 확실한 바이러스”라고 보는 반면 반대편에선 “북한을 불필요하게 자극하는 전단 살포는 중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선 탈북자들에 대해 “남북 관계의 진전을 구조적으로 가로막는 상수(常數)가 될 것”이라며 법을 만들어서라도 이들의 반북 캠페인을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문제는 우리 내부에 대북전단에 대한 일관성 있는 입장이 있느냐다. 우리 사회에선 10년 가까이 이어져 온 전단 살포에 대해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러다 북한이 발포하면서까지 반발하자 갑자기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이는 북한의 도발에 면죄부를 주고 향후 대화에서 주도권을 빼앗길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만만치 않다.

끓어오르는 반대론에도 불구하고 전단을 살포한 자유북한운동연합의 박상학(46·사진) 대표는 “공개 또는 비공개로 살포를 계속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논란의 한복판에 선 그의 얘기를 들어봤다.

북, 5~6월에 삐라 3만 장 대남 살포
-전단 공개 살포에 대한 반발이 거세다.
“지금까지 주로 해 온 비공개 살포는 계속 진행하되 필요할 때는 공개 살포도 병행할 방침이다. 북한이 우리에게 도발하거나 공갈 협박할 경우엔 당당히 공개적으로 전단을 살포할 거다.”

-주민들이 불안해한다.
“정부가 잘못이다. 4년 전 천안함이 폭침되고 연평도가 포격당했을 때 반격하는 대신 물러났다. 그러면 계속 물러나게 돼 있다. 지난 4일 북한 실세 3인방이 방남해 미소를 보낸 뒤 사흘 만에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하고 총격까지 한 건 정부가 북한의 버릇을 잘못 들인 탓이다. 인질 잡고 행패를 부리는 악한에게 ‘인질을 풀어 주라’고 요구하는 사람이 잘못인가. 조그만 희생이 두려워 옳은 일을 그만두란 말인가.”

-전단 살포가 남북 대화를 가로막지 않겠나.
“북한은 지난 5~6월 두 달 동안에만 3만 장 넘는 전단을 대형 열기구로 내려보냈다. 그걸 우리 군이 수거해 국감에서 공개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불륜녀’니 하며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욕을 한 내용도 있다. 그렇다면 북한이야말로 대화를 가로막는 세력 아닌가. 전단을 북한에서 보내는 건 괜찮고, 우리는 안 된다는 말인가.”

-정부도 자제를 권고하고 나섰다. 대화를 추진 중이니 그런 경향은 앞으로 더 심해지지 않을까.
“파주에서 전단을 살포할 때 통일부 담당 과장이 달려와 ‘남북 대화 분위기이니 살포하면 안 된다’고 말해 나와 입싸움이 벌어졌다. 하지만 행동으로 막지는 않았다. 경찰 300여 명이 출동했지만 지켜만 보더라. 따라서 박 대통령의 대북기조는 변치 않았다고 본다. 5·24 조치 해제를 언급했다지만 ‘무조건 풀겠다’가 아니라 북한이 적절한 조치를 한다면 해제를 검토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한 얘기 아닌가. ‘전쟁 중에도 대화는 한다’는 언급도 맞는 말이다. 원칙을 지키면서 대화로 상황을 진전시키자는 데 적극 찬성한다.”

-전단을 굳이 공개적으로 살포해 남남 갈등만 부추긴다는 지적이 있다.
“10번 중 9번은 비공개로 살포한다. 우리나라는 풍향이 워낙 빨리 바뀌어 미리 살포일을 정하기가 극히 어렵다. 지난 10일은 1년에 몇 번 있을까 말까 할 만큼 풍향이 좋은 날이었기에 공개 살포한 거다. 여기엔 뜻있는 분들의 후원을 유도하려는 목적도 있다. 정부나 기업이 우리에게 한 푼도 안 주니 국민에게 호소할 수밖에 없다. 매년 7만6000명의 후원자가 1억원가량을 모아 주고, 미국 인권기구도 5000만원가량을 지원한다. 전단은 보통 50만 장을 살포하는데, 그때마다 500만원이 든다. 연간 예산이 1억5000만원 선이니 매년 30차례 전단을 살포한다. 그중 공개 살포는 3차례 정도다. 열 번에 한 번꼴이라도 공개하지 않으면 후원이 끊긴다. 이걸 두고 어떻게 남남 갈등을 부추긴다고 할 수 있나.”

-과거 정부는 전단 살포에 어떻게 반응했나.
“노무현 정부 때는 오히려 쉬웠다. 보수세력이 두려웠는지 살포를 막지 않았다. 그때가 더 자유스러웠던 셈이다. 반면 이명박 정부는 겁이 많아 간접적으로 살포를 방해했다. 전단에 1달러씩 넣어 보내던 걸 북한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북한돈 5000원씩으로 바꿔 보낸 적이 있는데 통일부가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이라며 고소했다. 하지만 법원이 무죄를 선고해 그들만 망신당했다.”

-전단을 북한에 보내 봤자 효과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렇다면 왜 북한이 전단 살포에 극단적으로 반발하겠나. 지난해 들어온 탈북자가 2000여 명인데 그 가운데 수십 명이 ‘전단 덕분에 북의 모순을 깨닫고 내려왔다’며 내게 인사하더라. ‘북한에선 박상학을 잘 안다’고도 전했다. 김일성이 다녔다는 창덕중학교에선 내 사진을 걸어 놓고 타도집회를 열었다고도 한다. 전단이 효과를 내고 있다는 증거다.”

“휴전선 부근에 80% 떨어져 효과 커”
-탈북자의 80%가 함경북도 출신이니 비행거리 200㎞ 미만인 전단의 효과는 미미한 것 아닌가.
“전단의 80%가 휴전선 일대에 떨어진다. 10~20대 북한군 60만 명이 깔린 곳이다. 이들이 총부리를 남쪽 아닌 김정은에게 돌리게 하는 게 전단의 목표다. 효과는 크다. 지난해만 해도 북한군 2명이 탈북한 뒤 나를 찾아와 ‘전단을 보고 김정은이 나쁜 사람인 걸 알았다’며 고마워하더라. 이렇게 전단을 보고 동요하는 병사들이 느니까 요즘은 장교들이 전단을 수거한다고 한다. 그것도 자기 부인을 대동하고 작업을 한다. 전단에 든 달러를 탐내 부부 합동으로 걷는다는 거다. 이 사실이 병사들에게 퍼지면서 상관에 대한 혐오가 늘고 있다고 한다. 또 지금은 북한에도 휴대전화가 400만 대나 된다. 전단이 날아온다는 소식은 입소문으로 다 알게 된다.”

-전단이 탈북 유도 대신 북한체제 개선에 초점을 둬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전단에 ‘탈북하라’는 말은 한 번도 안 썼다. ‘선군정치 대신 선민정치를 하고, 핵·미사일 협박을 중단하라’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전단 살포는 남한 국민의 이목을 끌려는 대내용 쇼라고 비하하는 이도 있다.
“김정은 편에 서서 하는 궤변일 뿐이다. 나는 열 살배기 아들을 둔 가장인데 살해 협박을 받으면서도 70대 모친과 동생 등 온 가족과 함께 10년째 전단을 살포하고 있다. 쇼라면 이럴 수 있을까. 북한의 세습독재는 3대가 마지막이다. 김정일 시대까지는 주민들에게 충성심이 있었지만 김정은 시대엔 증오로 바뀌었다. 전단을 보고 진실을 깨달은 주민들의 손으로 김정은은 물러나게 될 거다.”

-탈북자들은 정치적 이유가 아니라 배가 고파 내려온 사람이니 반북(反北) 캠페인과는 다른 차원이란 주장도 있는데.
“평양 정치를 모르는 변방 민초들이 배고픔을 못 참아 내려온 건 맞다. 그런데 그게 결과적으로 가장 정치적인 행동이다. 주민을 굶겨 죽이는 김씨 왕조의 폭정이 생생히 폭로되면서 국제사회가 칼을 빼 들게 됐기 때문이다. 좌파들이 그런 궤변을 하는 건 김정은 체제가 무너질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강찬호 기자 stoncol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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