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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기의 글로벌 포커스] 세계 경제, 블랙스완은 없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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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7호 18면

세계 경제의 앞길에 먹구름이 다시 드리우고 있다. 경제가 회복할 것이란 기대감이 뚝 떨어지고 있다. 각국의 금융 및 원자재 시장은 공포감에 떨고 있다. 한국의 코스피지수도 1900 선까지 속절없이 밀렸다. 안전지대를 찾는 돈의 행렬 덕분에 각국의 채권값은 뛰고 있다.

뭐가 달라진 것일까? 6년 전 리먼브러더스 파산사태와 같은 ‘블랙스완(예기치 못한 대형 악재)’이 꾸물거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렇지 않다. 달라진 것은 없고, 예상치 못한 위기랄 것도 없어 보인다. 다만 세계 경제의 실상에 비해 과도하게 부풀었던 회복 기대감이 제자리를 찾아 숨을 죽이는 과정일 따름이다.

자산시장, 조정이 필요한 시점
주요국의 증시가 그렇다. 미국의 다우존스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계속 갈아치우며 1만7000 선을 돌파한 것은 아무래도 과속이었다. 독일 DAX지수가 지난 7월 1만 선을 넘었던 것도 그렇다. 미 다우지수는 최근 5년여 동안 160% 올랐다. 집값도 많은 지역에서 금융위기 전 수준을 넘어섰다. 미국이 경제 회복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양적완화를 종료하고, 창의적 기업들이 다시 움트고 있긴 하다. 그러나 뒤를 돌아보니 너무 앞질러 갔다는 우려가 커졌다.

냉정하게 봤을 때 세계 경제는 여전히 각국 중앙은행들이 공급한 유동성에 떠올라 항해하는 배와 같다. 미국·유럽·일본 등 모두 정책 금리가 제로 상태다. 각국 경제는 초저금리의 유동성 공급이 끊기면 꼼짝달싹 못할 처지다. 육지로 올라가 바퀴 달린 차로 환승하기엔 아직 너무 멀었다. 미국이 양적완화를 끝낸 뒤 내년 초 금리를 조기 인상하는 상륙작전을 단행할 것이라던 생각은 부질없었던 것으로 판명됐다. <9월 14일자 본칼럼 참조>

일러스트 강일구

미국은 양적완화 종료 및 조기 금리 인상설이 맞물리면서 국채와 모기지(주택대출) 금리가 한동안 크게 올랐다. 모기지 금리(30년 만기 고정물)의 경우 2012년 3%까지 떨어졌던 게 올 초엔 4.5%로 뛰었다. 그러자 주택가격 오름세가 멈추고 민간 소비도 위축되는 조짐을 보였다. 미국의 주가 상승은 실적 개선이 바탕에 깔렸지만 기업들이 자사주를 적극 사들인 효과도 크게 작용했다. 그런데 상당수 기업은 초저금리를 활용해 회사채를 발행하는 방식으로 자사주 매입자금을 마련했다. 이런 일도 채권 금리 상승으로 어려워졌다.

유럽 쪽 사정은 매우 딱하다. 경제성장률이 다시 0%대로 떨어졌고 디플레이션(물가 하락) 걱정까지 커졌다. 금리 인하 카드가 소진됨에 따라 조만간 양적완화에 들어갈 움직임이다. 일본도 좋지 않다. 아베노믹스의 유동성 펌프질에도 불구하고 경제 살리기가 한계에 부닥친 모습이다. 구조 개혁의 세 번째 화살은 불발탄이 된 지 오래다. 중국은 7% 선만 유지된다면 경제성장률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자세로 내수·서비스산업 육성 등 경제체질 개선에 매진하고 있다. 중국 제조업체들의 수요 감퇴에 미 달러화 강세가 가세하면서 국제 원자재가격은 추락하고 있다. 그 바람에 원자재 수출 의존도가 높은 러시아·브라질·인도네시아 등 신흥국 경제가 몸살을 앓고 있다.

이래저래 세계 경제는 뒤숭숭하기만 하다. 그러나 딱히 새로울 것도 없는 얘기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계속되고 있는 장기 침체의 연속선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문제가 있었다면 자산시장 투자자들이 너무 앞서 김칫국을 마시며 세계 경제의 본격 회복 쪽에 베팅한 점이었다. 현실을 직시해 거품을 예방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요동치는 시장을 보며 공포에 떨 필요는 없다. 역발상의 대응이 유효할 수도 있다. 좋은 자산을 싼값에 사들일 기회가 다시 오고 있다는 관점이다. 세계 경제가 힘겹게 굴러가고 있지만 2008년처럼 속절없이 무너져 내릴 가능성도 희박하다. 뭐가 문제인지는 다 드러나 있다. 처방이 뭔지도 알지만 경제의 근본 체질을 개선하는 작업을 병행해야 하기에 끝이 안 보일 따름이다.

한국도 양적완화 준비?
경제가 수렁에 빠지는 것을 막을 최후의 병기는 준비돼 있다. 중앙은행들이 양적완화의 포탄을 다시 또는 더 쏘아대는 것이다. 정부는 국채를 대거 발행해 경기 부양 재원으로 투입하고, 중앙은행은 돈을 찍어 그 국채를 떠안으면 된다. 장부상으로만 돌려칠 뿐 사실상 국가 채무의 화폐화다. 과거 대공황 때를 보면 전쟁을 통한 총수요 확대와 양적완화로 경제를 살렸고, 살인적 인플레이션으로 국가 채무를 소멸시켰다. 지금은 전쟁이 불가능하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되니 속절없이 시간에 기대는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이 기준 금리를 역대 최저인 2.0%로 내렸다. 경제 전문가들은 내년 초 1.75%까지 또 인하해야 할 것으로 본다. 그게 끝일까? “한은이 금리를 더 내리고 양적완화까지도 준비해야 한다.” 손성원 미 캘리포니아대 석좌교수의 말이다.

김광기 이코노미스트·포브스 본부장 kikw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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