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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수능 세계지리 8번문제 오류" … 오답 1만8000명 분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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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현재 대학 1학년생이 치른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세계지리 8번 문제에 오류가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1994년 수능 도입 이후 세 차례 복수 정답이 인정됐지만 법원이 문제 오류로 판결한 것은 처음이다. 수능은 국가가 주관하는 시험이어서 이 판결이 확정될 경우 큰 파장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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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고법 행정7부(부장 민중기)는 16일 2014학년도 수능 응시생 김모씨 등 4명이 “8번 문제가 오류이니 세계지리 과목의 등급 결정을 취소하라”며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과 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1심에서는 원고들이 패소했었다. 해당 문제는 ‘유럽연합(EU)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보다 총생산액의 규모가 크다’는 ㉢ 지문이 맞느냐는 것이다. 일부 교과서와 EBS 교재에는 2009년 자료를 인용해 EU의 총생산액이 크다고 돼 있지만 실제론 2010년 이후 NAFTA가 EU를 추월했다.

 1심 재판부는 지난해 12월 “해당 지문이 불확실할 수 있지만 오류는 아니다”고 판단했다. 8번 문제가 교과서를 보고 공부한 평균 수준의 수험생이 정답을 택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는 이유였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출제 범위가 교과서로 제한된다는 것은 교과서가 진실한 정보를 담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며 “학생들이 진리를 탐구하도록 하는 교육 목적과 수능의 특성 등은 객관적 사실에 부합하는 답을 선택하도록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평가원과 대입정책을 총괄하는 교육부에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해 수능에서 세계지리를 택한 수험생은 3만7000여 명. 이 중 8번 문제 오답자는 1만8000여 명이었다. 인터넷 게시판에는 “이미 재수를 하고 있는데 어떡할 거냐”며 분통을 터뜨리는 글이 쇄도하고 있다. 최종 판결과 무관하게 법원이 수능 문제 오류를 인정함에 따라 국가 주관 수능의 신뢰도에도 금이 갔다.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 데만 급급했던 평가원과 교육부의 대응도 부적절했다는 지적이다.

  문제 오류로 불이익을 받았을 수험생들이 구제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판결의 효력은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22명에게만 영향을 미치게 된다. 원고 4명과 다른 항소심이 진행 중인 18명이다. 서울고법 관계자는 “판결이 확정되더라도 개별적으로 지망 대학을 상대로 소송을 내 이 문제 때문에 탈락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 59명이 소송을 냈지만 나머지는 1심 패소 후 항소를 포기했다. 나머지 수험생들은 행정소송법상 소송을 낼 수 있는 시한인 90일이 넘어 소송을 낼 수 없다.

 해당 문제는 3점짜리여서 등급 산정에 변수가 됐을 수 있다. 평가원 측은 이날 “판결문 내용을 살펴본 뒤 대법원 상고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도 당장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문제의 결함을 가장 먼저 제기했던 박대훈 전 EBS 지리 강사는 “ EBS 교재에 나왔다는 이유로 평가원이 방심했다”며 “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 태도가 더 문제였다”고 꼬집었다. 2007년엔 수시전형이 끝난 상황에서 물리II 문항의 오류 논란에 물리학회가 가세하자 복수 정답으로 인정됐다. 등급이 오른 학생들에게 새 성적표가 배포됐고, 교육부는 해당 사유로 탈락한 학생을 구제하라고 대학에 공문을 보냈다.

김성탁·노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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