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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아파트 관리비 '난방투사'에게만 맡기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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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안효성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안효성
사회부문 기자

‘관리비 새는 아파트’ 시리즈(본지 10월 15, 16일자 1, 4, 5면)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만난 제보자들은 자신이 ‘문제아’ ‘꼴통’ ‘훼방꾼’으로 불린다고 했다. 이들에게 이러한 낙인이 찍힌 이유는 무엇일까. 한 제보자의 설명에 답이 숨어 있었다.

 서울의 한 아파트단지 감사를 맡고 있는 A씨는 입주자대표들이 부당하게 관리비를 쓴 정황을 포착하고 악착같이 파고들었다. 하지만 A씨에게 돌아온 것은 “아파트에서 소란을 일으킨다”는 이웃 주민들의 수군거림이었다. A씨는 씁쓸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관리비 문제를 파헤친다고 저한테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소송까지 감수하며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꼴통이 아니면 누가 꼴통이겠습니까.”

 관리비 비리로 갈등을 빚고 있는 아파트 주민들은 “정부가 관리비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해당 부처인 국토교통부와 지자체, 경찰까지 어디 하나 믿고 기댈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주민 B씨는 “국토부에 민원을 넣었는데 지자체로 이관되고, 지자체는 다시 입주자대표회의로 일을 떠넘겨 결국 고발부터 소송까지 내가 알아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파트는 개인 재산”이라는 이유로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지자체에서 실태조사 등을 실시하지만 실제적인 행정력이 동원되지는 않고 있다. 선거를 의식해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 관리비 분쟁을 겪고 있는 서울의 한 아파트단지에는 현직 구청장이 살고 있다. 이 아파트에서 만난 주민은 “퇴근하는 구청장을 붙잡고 ‘주민 갈등이 해결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하니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며 들어가더라”고 전했다. 결국 관리비 문제가 주민 개개인의 열의에 달려 있는 셈이다. 하지만 몇몇 주민이 전면에 나서기엔 부담이 너무 크다. 한 입주자대표는 관리소장의 비리를 폭로하다 소송에 휘말려 소송비용만 5000만원이 들었다고 했다.

 최근 아파트 난방비 의혹을 제기한 배우 김부선(53)씨는 네티즌들 사이에서 ‘난방투사(鬪士)’로 불리고 있다. 투사 대신 제도로 비리를 막을 방법은 없는 것일까. 취재에 응한 전문가들에게 물었다.

 “정부가 앞장서 관리비 비리를 일벌백계(一罰百戒)해야 한다.” “아파트 관리를 준공영제로 바꾸자. 민간 부문에만 맡기기엔 이미 너무 많이 곪았다.”

  물론 1차적인 책임은 주민들에게 있다. 입주자대표 투표에 적극 참여하고, 선출된 대표를 제대로 감시하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정부의 노력이 함께 어우러질 때 ‘과다 관리비’ 논란은 해소될 수 있다. 아파트 주민들의 소중한 관리비를 지키기 위해 누군가 ‘투사’로 나서야 한다는 건 정상이 아니다.

안효성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