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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 리조토, 대파 샐러드 … 기발해~ 입맛 당기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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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여행에서 버스 뒷좌석을 고집하는 아이들의 남다른 포스, 변변찮은 게임 도구 하나 없던 시절 몇 시간을 놀아도 지겹지 않던 베개 싸움, 모닥불을 앞에 놓고 ‘어머니’란 단어만 들어도 눈물을 주르륵 흘리던 그때…. 식재료 시리즈에 웬 난데 없는 수학 여행 타령이냐고? 아니다. 이건 단언컨대 요리 이야기다.

앞서 언급한 수학 여행의 스토리는 지난해 말 서래마을에 문을 연 ‘스와니예’의 이준(31) 셰프가 요리로 구현한 것들이다. 그의 손을 거치면 버스 뒷좌석의 개성 넘치는 아이들은 5가지 다른 토핑으로 구성된 에피타이저로, 베개싸움은 베개 모양의 파스타로, 모닥불은 약쑥과 노루궁뎅이 버섯을 올려 만든 등심 스테이크로 재탄생한다. 한마디로 ‘스토리 텔링’이 있는 창작 요리라고나 할까.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그에게 주문했다. 흔하고 평범한 우리식 식재료를 화려하게 변신시켜 달라고. 그 결과 대파는 당당한 샐러드로, 수수는 럭셔리한 리조또로 변신했고 쌈장은 품격있는 수육과 만났다.

글=김경진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스와니예’ 이준 총괄셰프(왼쪽 셋째)와 함께 일하는 팀원들.

다이닝바를 꿈꾸다

서울 방배동 서래마을에 있는 스와니예는 여러 면에서 혁신적인 레스토랑이다. 일단 레스토랑에 들어가는 순간 중간에 자리 잡은 대형 오픈 키친(개방형 주방)이 눈에 띈다. 요즘 아무리 오픈 키친이 대세라지만 이렇게 사면이 뚫려 있는 곳은 찾기 힘들다. 여기에 주방 전면의 3개 면을 바 형태로 만들었다. 바에 앉은 손님들은 주방에서 다이내믹하게 움직이며 음식을 만드는 셰프들의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이런 오픈 키친을 만드는 것은 이 곳 총괄 셰프인 이씨의 오랜 목표였다. 그는 언제든 투자자만 나타나면 당장 내일이라도 레스토랑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분명한 밑그림이 있었다고 한다. 경희대 조리학과를 졸업한 그는 2009년 자신의 꿈을 위해 미국에서 견문을 넓히기로 결심한다. 언어도 익힐 겸 캐나다의 레스토랑에서 근무하면서 6개월 정도 경험을 쌓은 그는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명문 요리 학교인 CIA에 입학했다. “패기가 넘칠 때라 그랬는지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이 너무 지루했어요. 대신 제가 존경하는 토머스 켈러의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경험을 쌓았죠.”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토머스 켈러의 철학은 “코스 요리를 먹을 때, 사람들은 두 번째 음식부터 지루해 하기 시작한다. 이 때문에 요리사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놀라게 하는 요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어 이씨는 같은 레스토랑의 헤드 셰프가 독립해서 차린 ‘링컨’에서 파스타 메이커로 경력을 쌓아 나갔다.

팝업을 띄우다

2011년 한국으로 돌아온 그가 사람들 사이에서 알려지기 시작한 건 ‘팝업(Pop-up)’ 레스토랑을 선보이면서다. 단기간 비어있는 레스토랑을 임대해 ‘반짝’ 운영하는 형태의 레스토랑이었다. 당시 뉴욕과 런던의 젊은 셰프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형태였지만 한국에선 생소한 개념이었다. 그는 여기서 한 술 더 떠 초단기간 운영하는 형태의 ‘마이크로 팝업’을 선보였다. ‘준 더 파티’란 이름으로 하루나 이틀 정도의 짧은 기간에 미리 예약받은 16명의 고객을 대상으로 자신만의 코스 요리를 내놨다.

첫 팝업 레스토랑을 성공리에 마친 그는 이듬해 8월부터 한 달 간 ‘준 더 파스타’라는 팝업 레스토랑을 연다. “제가 만드는 파스타는 버터가 베이스가 되는 파스타라 생소할 수 있는데도 손님 반응이 뜨거웠던 것을 보고 자신감을 얻었어요. 모두가 토마토·오일·크림 맛만을 좋아하는 건 아니라는 걸 확인하게 된 셈이죠. 오히려 공급이 없어서 그동안 손님들이 다른 맛을 즐기지 못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어 그는 이듬해 1월부터 6개월간 신사동에서 좀 더 긴 호흡으로 ‘준 더 파스타’를 선보였다. 오프라인 레스토랑인 스와니예로 가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던 셈이다.

스토리를 입히다

팝업 레스토랑으로 가능성을 엿본 그는 지난해 말 귀국한 지 2년 만에 개인 투자를 받아 스와니예를 오픈하게 된다. 그는 앞선 실험을 통해 “맛보다 경험의 공유가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건방지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저는 한 번 간 레스토랑은 다시는 안 가요. 먹어봤으니 됐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다시 가고 싶은 레스토랑은 어디일까 고민했죠. 결국 ‘이런 공간에서 이런 사람들이 만든 음식이라면 무조건 좋다’라는 신뢰감 내지는 교감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고객과의 교감을 위해 그는 두세 달에 한 번씩 코스 요리를 바꾼다. 현재 ‘에피소드4’가 진행 중이다. 주제는 ‘시네마 천국’이며 ‘대부 먹물 리가토니’ ‘물랑루즈 랍스터’ ‘겨울 왕국 파나코타’ 등의 메뉴로 구성돼 있다. 그는 “요리에 스토리 텔링을 입힘으로써 손님이 음식을 먹으면서 각자 가진 추억을 꺼내 놓고 공유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고, 새로운 에피소드를 기대하며, 이런 기대가 다시 요리사로 하여금 새로운 요리를 창작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요리사가 하고 싶은 대로 요리해도 손님이 믿고 맡겨주는 그런 문화가 형성됐으면 하는 게 제 원대한 포부”라며 “저도 이렇게 실험하고 도전했으니 겁먹지 말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젊은 셰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채소에 수육을 얹어 쌈장을 싸먹는 한식의 고급스러운 재해석. 야들야들한 수육에 톡톡 터지는 옥수수알을 곁들여 씹는 맛을 살렸다.

● 이준 셰프의 식재료 활용법

대부분의 셰프들은 식재료 때문에 메뉴를 바꾼다. 신선한 제철 식재료와 어울리는 요리를 내놓기 위해서다. 그러나 두세 달에 한 번씩 메뉴를 바꾸는 이준 셰프는 의외로 식재료에 대해선 “별로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다. “뉴욕에서 말하는 로컬의 개념은 한국보다 넓다”며 “굳이 새벽 시장에서 장을 보거나 산지 직송을 해야지만 좋은 재료를 구할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식재료 간의 궁합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예를 들면 파스타는 면과 음식의 캐릭터가 맞아야 한다. 스와니예에서 모든 파스타를 직접 만드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한다. 그에 따르면 생면은 씹을수록 면 자체의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강한 소스와 어울리지 않는다. 얇은 파스타면은 액체로 된 소스와, 두꺼운 파스타면은 진한 소스가 잘 어울리고, 튜브형은 건더기가 있는 소스와 잘 어울린다고 한다. 다음은 그가 제안한 세 가지 식재료의 화려한 변신.

쌈장 수육

① 통삼겹살에 소금·후추로 간한 뒤 기름을 두른 팬에 1분간 표면을 익혀 색을 낸 뒤 꿀과 약간의 쌈장을 푼 물에 넣고 잔잔히 3시간 동안 끓인다.

② 생크림과 우유를 반반씩 섞은 소스에 옥수수 낱알 또는 스위트콘을 넣어 뭉근히 익힌 후, 버터를 녹인다.

③ 올리브 오일을 두른 팬에 슬라이스한 고추·마늘을 색이 나지 않게 볶다가 불을 강하게 올린 뒤 손질한 케일을 넣고 숨이 죽을 때까지 볶으며 소금으로 간한다.

④ 접시에 옥수수를 올리고 케일볶음으로 덮은 뒤 1㎝ 두께로 썬 삼겹살을 올리고 ②의 소스를 뿌린다.

대파 샐러드

① 그릴에 구운 대파를 올리브 오일과 함께 짜지 않은 미지근한 소금물에 넣고 30분간 익힌다.

② 대파를 식힌 뒤 심지 안에 잘 씻은 조개젓을 채워 넣는다.

③ 마스카포네 치즈 위에 대파와 루꼴라를 얹고, 염장 후 건조시킨 계란 노른자를 갈아 올린다.

랍스터 수수 리조토

① 랍스터는 끓는 물에 2분간 데친 뒤 껍질과 살을 분리한다.

② 수수는 기름에 천천히 볶다가 닭육수를 넣어가며 약하게 끓여 씹었을 때 딱딱한 심이 남을 때까지 조리한다.

③ ②에 랍스터 내장을 넣고 같이 볶다가 잘게 썬 김치를 넣고 끓인다.

④ 랍스터살을 버터와 함께 가볍게 볶은 뒤 완성된 리조토 위에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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