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깊이 읽기] 남북전쟁 불씨는 노예 아닌 관세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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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 16세기 네덜란드를 위임통치하던 스페인 귀족 알바공(公)이 네덜란드인의 고혈을 짜내고 있음을 풍자한 그림.

세금 이야기
전태영 지음, 생각의 나무, 403쪽, 1만7000원

미국 남북전쟁은 노예해방 전쟁으로 알려져 있다. 노예제도를 고집한 남부와 노예 해방을 주창한 북부의 싸움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에이브러험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을 선언한 것은 남북전쟁이 벌어진 2년 뒤였다. 노예해방 선언은 당시 계속 지기만 하던 북군에게 새로운 전쟁 명분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링컨 대통령은 선거 공약이나 취임 연설에서 남부 주민을 안심시키기 위해 노예해방은 없을 것이라는 점을 계속 강조했다.

그렇다면 남북전쟁의 진정한 원인은 무엇인가? 바로 세금, 그 중에서도 관세때문이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링컨 대통령은 수입품 관세율을 미국 역사상 가장 높은 47%로 올렸다. 북부 공업지역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때문에 농업지역인 남부 사람들은 농산물을 수출한 대금으로 비싼 북부 공업제품이나 유럽 수입제품을 살 수 밖에 없었다. 북부 사람들이 정한 관세가 없었다면 남부는 두 배나 부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래서 남부 사람들은 연방수입관세를 무효화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이를 강행하는 바람에 내전으로 치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역사적 사건의 뒤안에는 거의 항상 '세금'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이 책은 세금 문제가 인류를 고달프게 만든 사례를 고대 이집트부터 추적했다. 그 결과 강대국의 흥망을 좌우했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세금 문제였음을 세세하게 설명한다. 로마 제국은 야만인을 막기 위해 군대를 늘리다 보니 군대 유지에 필요한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농민들에게 무리하게 세금을 매길 수밖에 없었다. 무거운 세금 부담때문에 농민들이 토지와 마을을 버리고 도망갔고, 이로 인해 작물 생산량이 줄고 세금이 잘 걷히지 않으면서 재정이 악화한 로마는 안에서부터 무너져 갔다.

엘리자베스 1세 시대 영국의 세율은 유럽에서 가장 낮았다. 여왕의 세금정책은 국민에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주고자 하는 것만 받겠다는 것이었다. 스페인 무적함대와의 전쟁 때 영국 국민이 자발적으로 주머니를 털었던 것도 여왕의 이런 정책에 감동했기 때문이다. 대영제국의 기틀이 마련된 것도 이 무렵이다.

경상대 경영대학 교수인 저자는 한국의 밝은 앞날을 위해 어떤 조세정책이 펼쳐져야 하는가를 생각하며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풍성한 역사적 사례들이 종횡으로 엮여 있기 때문에 세금이라는 딱딱한 주제인데도 읽기 부담스럽지 않다.

이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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