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아테네의 몰락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민주주의를 꽃피운 고대 아테네의 고민 중 하나는 빈부 격차였다. 아테네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부자의 기부(寄附)'였다. 아테네에는 '부유한 시민의 공적인 의무'라는 게 있었다. 부자는 공공복지를 위해 기부금을 내야 했다. 특히 축제에 들어가는 비용은 부자들의 기부금으로 충당했다. 아테네의 전함(戰艦)을 관리하는 비용도 부자들의 몫이었다. 강력한 해군력을 자랑하던 아테네의 전함은 적지 않은 숫자였다. 전함을 만드는 비용, 승무원의 식량과 급여만 국가가 부담하고 장비 제공, 수선 등 나머지 관리 비용은 부자들이 책임졌다. 기원전 4세기께 기부금을 내는 부자는 아테네 전체 인구의 4%였다고 한다.

빈부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또 다른 장치는 구제기금이었다. 구제기금의 당초 목적은 가난한 사람의 극장 입장료를 보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사용되지 않고 남은 돈은 가난한 시민에게 나눠졌다. 이후 이런저런 목적으로 다양한 구제기금이 만들어졌고, 여기에 의존해 살아가는 사람이 많아졌다. 정부 재정이 국가 방위나 시설 투자보다는 구제기금으로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일이 잦아지면서 재정은 악화하기 시작했다.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중우(衆愚)정치로 변질하면서 사태는 더 나빠졌다. 시민들은 정부 예산을 전함 건조보다 축제에 쓰는 쪽을 선택하곤 했다.

'부자의 기부'에 대한 시각도 점차 바뀌었다. 아테네 후기로 갈수록 기부는 부자를 착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고, 부자들의 부담은 점점 커졌다. 유명한 변론가 이소크라테스(기원전 436~338)는 이런 상황을 개탄했다. "내가 어렸을 때는 부자라고 불리는 것이 위험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날은 사람들이 재산을 숨기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법률을 위반하는 것보다 부자라고 불리는 게 더 위험하기 때문이다."

막강한 해군력을 자랑하고 인구나 경제력에서 앞섰던 아테네가 스파르타에 패한 것은 의외였다. 페스트 창궐, 동맹국 이탈과 페르시아 개입 등이 아테네 패전의 원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아테네 몰락의 근본원인은 분배주의라는 지적('세금 이야기' 전태영 지음)이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부자임을 자랑할 수 없게 만드는 사회는 쇠망할 수밖에 없다는 교훈이다.

이세정 경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