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총학생회 '시련의 계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명예박사 학위 수여로 빚어진 갈등으로 탄핵위기까지 맞았던 고려대학교 총학생회가 또 다른 위기에 빠졌다.

이달 초 이 대학 법학과에 재학 중인 송모(24)씨가 총학생회의 학생회비 횡령 등 의혹과 관련해 경찰에 수사를 촉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한 것에 이어, 학교 당국도 지난 3일 학생처장과 총무처장 명의의 공고를 통해 "등록금과 함께 일괄징수해왔던 학생회비를 2005년 제 2학기부터 등록금과 분리해 걷기로 하는 '학생자율납부제'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학교측이 학생 1인당 1만1000여원 정도인 학생회비의 납부 여부를 학생 자율에 맡김에 따라 총학생회의 주요 수입원 역할을 해온 학생회비 모금액도 대폭 줄어들 전망이다.

이 대학 총학은 학생회비에서 매년 3억여원 정도를 지원받아 활동해왔다.

학교 측의 '학생회비 자율납부제'실시 결정이 알려지면서 총학은 "총학생회의 대표성을 깎아 내려는 학교 측의 정치적 의도가 숨어있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총학은 7일 성명을 내고 "누구라도 이 처사가 '보복성'이라는데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학생회비의 통합고지는 총학생회의 대표성의 상징인만큼 총학의 대표성을 깎아 내려하는 정치적 의심마저 불러일으키는 '학생회비 분리납부'시도를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또 "이건희 회장에 대한 철학박사 학위 수여 이후 불거진 갈등이 학교 당국에 의해 더 확대되어 가고 있다"며 "학생에 대한 징계를 철회한 다음 화합하자고 해놓고 일방적으로 '분리납부'를 통보한 것은 문제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편협한 태도"라 비난했다.

이에 대해 학교측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학생회비와 등록금의 분리 징수는 분리납부를 건의해온 학생들의 오랜 여망을 받아들인 것 뿐이며, 학교가 학생회비의 징수를 강제할 수 있는 법적근거가 없다"고 말해 이같은 방침을 철회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고대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학생회비 분리징수 결정'을 지지하는 글들이 더 많이 올라와있다.

아이디 '지나가다'는 "학생회는 학생전체의 대표성을 남발하는 비합리적이고 독재적인 정치단체"라고 전제하면서 "어떤 단체든 단체구성원으로서 회비납부는 자율에 맡기는게 당연한 만큼 학생회비를 등록금에 묶을 것이 아니라 납부는 학생들의 의사에 맡겨야 한다"며 학교 측의 결정을 지지했다.

자신을 공대 95학번이라 밝힌 한 학생도 "'학생회비 자율 납부제'실시는 학교 측의 부당한 조치가 아니라 많은 학생들의 건의 사항을 학교가 받아들인 것"이라면서 "고대생들이 왜 이번 총학에게 불신을 가졌는지 생각해보라"고 총학을 비난했다.

이수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