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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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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강갑생 기자 중앙일보 교통전문기자
강갑생
JTBC 사회 1부장

이달 초 영화를 한 편 봤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동체시력이란 특이한 능력을 가진 남자가 주인공이다. 그는 순식간에 움직이는 물체를 기막히게 알아본다. 아무리 빨라도 다 느리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한 구청의 폐쇄회로TV(CCTV) 통합관제센터에 취직을 한다. 초등학교 때 좋아했던 여인도 만난다. 애틋한 감정이 다시 싹트고 여자 주인공은 가끔 동네 CCTV를 바라보며 인사를 보낸다. 남자 주인공이 보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다. 관제센터에선 수많은 CCTV를 통해 여러 범죄를 해결한다. 다양한 사건 속에 남자 주인공은 시력을 잃는다. 하지만 여자 주인공과의 재회를 통해 진정한 사랑을 찾게 된다.

개인적으론 가슴 훈훈하고 살포시 미소가 지어진 그런 영화였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내내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은 불편했다. 이유를 따져봤다. 결론은 CCTV였다. 영화 속에선 CCTV가 설치된 지역이라면 손바닥 들여다보듯 다 확인이 가능했다. 영상을 확대해 얼굴은 물론 자동차 번호판까지도 실시간으로 파악한다. 또 행인이나 차량이 어디로 갈지 예측해 동선도 다 추적해낸다. 분명 영화적 요소를 가미해 더 극적으로 만든 측면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도 별반 차이는 없어 보인다. 설령 일부 차이가 있더라도 기술발전 속도를 따져보면 곧 현실화가 가능하다. 인천국제공항이 유사한 예다. 공항 안팎엔 CCTV가 1500대나 설치돼 있다. 화장실과 일부 사무실 내부를 제외하곤 모두 CCTV의 사정권 안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몇 년 전 공항 입국장에서 발생한 납치사건도 CCTV 덕에 해결했다. 전국적인 현황도 만만치 않다.

정부부처·공공기관·지자체에서 설치해 운영하는 공공용 CCTV만 56만여 대에 달한다고 한다. 민간이 설치한 CCTV까지 보태면 그 수는 훨씬 늘어난다. 이 중 전국 110곳의 통합관제센터에서 22만 대의 공공용 CCTV를 연결해 보고 있다. 지역마다 CCTV 설치대수가 들쑥날쑥하지만 이 정도면 상당한 수준이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거리에 나서면 CCTV가 늘 지켜보고 있는 셈이다.

기분은 찜찜하지만 그렇다고 CCTV의 순기능을 무시할 순 없다. 일부 반론은 있지만 방범과 사고 예방, 안전을 위해선 그 필요성이 충분히 인정된다. 문제는 어떻게 활용하고 관리하느냐다. 마음만 먹으면 불법적으로 뒤를 캐거나 감시하는 용도로 얼마든지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 일이 드러나 논란이 된 적도 있다.

그런데도 지자체에 따라선 관제센터 운영과 보안이 허술하단 지적이 나온다. 운영인력의 전문성이나 감독 기능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국정감사에서도 늘 빠지지 않고 지적되곤 한다. 보완을 서둘러야 한다. 자칫 대규모 사이버 망명을 초래한 ‘카톡 검열 논란’처럼 CCTV도 거센 저항에 휩싸일 수 있다. 국민에게 괜한 불안감이나 근심거리는 더 이상 안기지 않길 바란다.

강갑생 JTBC 사회 1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