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 박자 늦은 금리인하, 한은은 역할 고민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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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2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2.25%에서 2%로 다시 낮췄다. 내수부진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글로벌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나온 이번 금리인하는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여진다. 최경환 경제팀이 추진해온 확장적 거시정책의 경기부양 효과가 미진한 만큼 한은의 추가 금리인하는 내수회복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사실 현 단계에서의 금리인하는 한은으로서도 적지 않은 부담을 각오한 결정이다. 가뜩이나 가계부채가 경제에 큰 짐이 되고 있는 마당에 더 낮아진 금리는 가계부채를 더 늘릴 위험이 크고, 수퍼달러와 엔저(低)로 불안해진 국제금융시장 상황에서 외자 유출을 부추길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한은이 금리의 추가인하를 단행한 것은 가계부채 증가와 외화유출에 대한 우려보다 경기회복이 더 시급하고 중요하다는 판단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한은이 이런 판단을 진작에 했다면 금리 인하를 보다 일찍 시작했던 편이 더 나았을 수 있다. 연초에 선제적으로 금리 인하를 단행했더라면 가계부채나 외화유출에 대한 부담 없이 경기부양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은이 매번 금리조정의 타이밍을 놓치고 정부와 시장의 압력에 못 이겨 마지못해 뒷북을 치는 식의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은이 금리조정을 미적거리는 바람에 국제 금융시장의 변화를 거스르거나 정부의 거시정책과 엇박자를 내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물가안정을 유일 목표로 삼은 채 중앙은행의 독립성만을 외쳐온 결과다. 그러나 물가수준은 한은의 목표치를 훨씬 밑돌아 오히려 디플레이션을 걱정할 정도였고, 정부정책 기조와의 엇박자는 독립성 보장의 의미를 퇴색시켰다.

 물가안정이 의미를 잃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국 중앙은행들은 제로금리와 양적완화를 불사하는 비정통적인 통화정책으로 경기회복과 성장을 지원하는 쪽으로 역할을 바꿨다. 한은도 물가안정과 독립성만을 고집할 게 아니라 변화된 경제여건 속에서 중앙은행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